4분기 정국 전망: ‘중심 부재’ 위기 속 주도권 확보 경쟁
4분기 정치 상황은 대통령 지지율 급락 속에서 특정 인물이나 세력이 중심을 차지하지 못하는 국면을 특징으로 할 것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주도권 확보 경쟁은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 총선을 앞둔 주요 정치인 또는 세력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새로운 갈등과 대립축이 생겨날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뚜렷한 한계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인사 문제 등을 놓고 정치적 스캔들이 불거져 나올 가능성도 상당하다.
4분기 정국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 주요 행위자의 전략적 조건과 행동 전망, 주요 상황 변수로 나누어 살펴본다.
대통령과 야당 지지율에 따른 4개 시나리오
4분기 정국에 영향을 미치는 양대 지표는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와 국민의힘 지지율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청와대의 국정 장악 능력과 함께 민주당 안팎의 정치 상황을 결정하는 기본 변수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야당 내부의 권력 구조, 특히 장동혁 체제의 유지 가능성과 한동훈‧오세훈 등 차기 주자의 움직임을 결정한다.
두 변수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네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다.
⒜ 대통령 지지율 하락‧국민의힘 지지율 정체: 탈(脫)이재명 본격화
하락 폭이 크다면 대통령을 내세워서는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내에서는 어떻게든 당청 관계를 바꾸고, 이를 위해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등 정치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것이다. 차기 주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김민석 대표의 독자 행보도 시작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당의 ‘탈이재명’을 가속화하기 위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비주류의 공세가 강화될 것이다. 대통령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하면서 내홍이 심해질 것이다.
기준점은 갤럽 국정수행 평가 35%다. 30% 초중반으로 하락한다면 20%대로 추가 추락 가능성이 언급될 것이다. 부정평가는 60%선에 근접했거나 아니면 넘어설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민주당은 안심하고 내부 투쟁에 나설 여건을 얻게 된다. 다른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장동혁 체제에 대한 교체 압력이 커질 것이다. 이에 따라 한동훈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야당다운 야당’ 행보가 좀 더 수위를 높일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내년 4월 재보선을 신임 투표처럼 몰고 가는 한편, 조직 장악 움직임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다.
⒝ 대통령 지지율 유지 내지 상승‧국민의힘 지지율 정체 : 개헌 등 정계 개편 시도
대통령 지지율이 현 수준에서 유지되거나, 나아가 상승이 이루어진다면 최근 두 달가량의 위기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큰 폭의 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청와대와 여당은 전열을 정비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야당이나 민주당 비주류를 분열시키는 의제를 던질 것이다. 개헌이 대표적이지만, 개헌 이외에 다른 의제들도 제기할 것이다. 가령 조국혁신당이나 국민의힘 의원을 개별 입당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정체하거나 소폭 하락할 것이다. 장동혁 지도부의 문제는 여전할 테지만, 대통령 지지율 하락 국면만큼 지도부 교체 압력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동훈과 오세훈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 비주류의 공세가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대형 스캔들 등 지지율 하락 요인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 대통령 지지율 하락‧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여야 모두 내전 상황 조성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범민주당 진영의 움직임은 시나리오 ⒜와 같다.
주목해야 할 곳은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독자적으로 2028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향후 대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 현재 지지율은 20% 후반~30% 정도이고, 35%선을 넘기란 힘들다. 따라서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도부 교체 압력은 상당히 강하게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장동혁 체제를 내몰 정도로 커지지 않으며, 오히려 강성 우파 결집이 강하게 이루어지면서 장동혁 체제를 떠받치는 그림이 나올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을 포함한 범보수 진영 내부에서 내전적 상황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 대통령 지지율 유지 내지 상승‧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여야 대립 구도 강화
청와대가 어느 정도 국정 운영에서 통제력을 회복한다. 동시에 중도 내지 연성 보수 유권자들이 국민의힘 지지자로 가세한다. 이 경우 여야 간의 대립 구도가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 대립 구도는 이재명, 김민석, 장동혁 등 각당 지도부에게도 이득이다. 또 한동훈, 오세훈 등 차기 보수 주자들도 누가 더 야당 지도자감인가를 놓고 메시지 강도를 높일 것이다.
주요 행위자의 전략적 상황과 딜레마
한편 앞으로 청와대, 민주당 주요 정치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이 당면하게 되는 상황과 전략적 딜레마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이재명의 문제: 성남 파벌 외 엘리트 집단이 없다
특정 파벌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지지율이 뒷받침되어야만 유지가능하다. 지지율 하강기에 권력 집중은 오히려 독이 된다. 책임을 오롯이 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선 뉴스레터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 청와대 그리고 이재명 파벌의 문제는 장교단이라 할 만한 집단이 없고, 이재명 대통령이 홀로 파벌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성남시에서 발원한 핵심 집단은 수가 적고, 고위직에 임명하기엔 경력이 일천하며, 확장성도 낮다. 지지율 하락이 곧장 정진상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책임론으로 이어지게 된 이유다.
문제는 이들을 대체하거나, 새롭게 끌어들일 만한 엘리트 집단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친명계’는 잡다한 비주류 연합군이고, 이익집단에 가깝다. 공통된 세계관이나 장기적, 복합적인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집단이 아니다. 딱히 ‘일’을 맡길만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의원 중 이른바 7인회에 속한 이들이 눈에 띄며, 그 가운데 몇 명이 청와대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곤 하지만, 이들이 전면에 나서서 이재명 대신 비를 맞는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사실 청와대부터 실세 정치인을 끌어들일 생각이 크지 않다고 볼 구석도 상당하다. 6월 총리 인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후보로 거론되던 정성호 법무부 장관,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을 제치고 별다른 정치적 기반이 없는, 그래서 맡은 일을 공무원처럼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한성숙 당시 중기부 장관이 선임됐다. ‘왕총리’도 ‘황태자’도 만들어지길 원치 않고, 총리실이 청와대 대신 의사결정 라인에 서는 것도 꺼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지지율이 낮은 국면에서 유력 정치인, 나아가 세력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끌어들이려면 그만큼 대가를 주어야 한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이재명과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는 데 따르는 비용은 많이 들 것이다. 청와대가 ‘엘리트 기반 확장’에 나설 경우 직면하게 될 딜레마다.
2. 민주당의 문제: 대통령 지지율에 묶인 정치적 자본
여당 정치인들이 대통령 지지율이 낮을 때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여당 내 핵심 정치인 내지는 대선 주자급 정치인의 지지율도 덩달아 하락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보다 정도는 약하지만, 민주당도 여당일 때에는 ‘대통령당’이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30%선 밑으로 떨어지게 될 경우 중도층은 물론 고정 지지층의 이탈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생하면서 지지자 연합이 해체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여당 정치인들은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싶지만, 그렇다고 당을 장악하고 바꿀만한 제대로 된 리더십은 그들의 낮은 지지율 때문에 좀처럼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대통령 없는 여당’에서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권력의 공백이 발생한다.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누구도 그 공백을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지리멸렬한 각자도생 속에서 꽤 무질서한 후퇴 국면이 빚어지게 된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대통령 또한 자기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낮은 지지율에서 당내 갈등은 격화되고 대안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2005년 이후 열린우리당이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서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김근태‧정동영 등 차기 주자들의 경쟁과, 이들 주자와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도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정동영‧김근태‧친노 직계 등 계파들이 서로 각자도생하면서 무너지게 됐다. 내부 갈등 속에서 지지자 연합의 해체가 더욱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의 문제는 대통령에 매어 있는, 신한국당 스타일 보수정당의 면모를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주류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강력한 비주류의 구심점을 자청하는 유시민, 김어준 등의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시끄럽긴 하겠지만, 대선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상 이들은 무력한 비주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나아가 민주당 비주류는 검찰 개혁 이외에 다른 의제가 없다. 옛 친문계의 핵심 지지자 집단은 사회경제적으로 고소득, 고자산의 장노년층으로 ‘지금 이대로’를 지키는 것이 이해관계에 들어맞는다. 정치는 국민의힘이 개헌 저지선만을 간신히 지킬 정도로 쪼그라들었고, 언론은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친민주당 유튜브가 장악했다. 10월 검찰마저 사라지면, 법원 정도가 ‘적’의 명단에 남는다. 동원 기제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친민주당 유권자들을 끌어들여 당내 경쟁에서 이길 만한 수단도 없다. 이들 비주류가 ‘인물’ 이전에 ‘이데올로기’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게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3. ‘일당백 한동훈’ 현상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야당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야당의 모습은 두 가지다. 첫 번째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는 정치 세력이고, 두 번째 ‘여당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정치 세력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낮았던 것은 두 가지 모두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훈이 보수의 차기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야당다운 야당’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 낙마,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 등에서 정부와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정치인이나 다름없다. 장동혁이 올림픽공원에서 북 치는 장년 남성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강성 우파에 아부할 때, 한동훈은 정권의 아픈 곳을 공격해 승점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 당시 내홍을 겪으면서 침체 상태이던 민주당이 다시 제대로 전열을 정비하고, 지지를 얻기 시작한 계기 중 하나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정부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였다. 집권 4년차를 맞아 지지율 하락과 차기 권력 창출 전망 부재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박근혜 정부에 타격을 주면서, 싸우는 야당의 면모를 보였다.
오세훈 시장이 최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에 직격탄을 날리면서 메시지 정치를 하는 것도 결국 자신이 ‘싸우는 야당’의 지도자임을 보이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4분기에도 한동훈과 오세훈의 야당 메시지 경쟁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분명하다. 바로 ‘이길 수 있는 야당’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한동훈과 오세훈이 그에 적합한 지도자인지 보여주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훈은 자신만의 집권 비전, 승리 전망을 보여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리더십을 입증하여야만 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글(장동혁 체제, 총선까지 간다? 만년 2위 정당의 역학)에서 지적했듯 국민의힘 내부에서 새롭게 승리 연합을 구성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새로운 지지층을 규합해서, 보수 지지자 연합을 재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훈은 서울 압구정 출신의 엘리트 검사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평범한 유권자의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오세훈은 어떻게 서울시장이라는 제도적인 한계 속에서 경기도와 인천 유권자들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가 있다.
4분기가 지날수록, 그리고 국민의힘 리더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수록 ‘야당다운 야당’ 못지 않게 ‘이길 수 있는 야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진짜 문제’가 부상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일당백 한동훈’ 또는 ‘오세훈 대망론’이 계속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판가름 날 것이다.
상황 변수
4분기 정국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변수는 크게 세 개다. 먼저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국정 장악력 약화에 따라 불거지게 되는 스캔들이다. 두 번째는 개헌의 파급력이다. 세 번째는 청와대의 국정 기조 전환용 카드, 특히 정책 측면에서의 카드다.
1. 국정 운영 변수는 스캔들
집권 3~4년 차가 되면 정권의 스캔들이 발생한다. 비리 자체는 권력이 강한 시기에 이루어지고, 그것을 덮고 있던 억제 장치가 권력 누수기에 순차적으로 풀리면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집권 연합 내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그에 따라 상대방이 갖고 있던 약점을 들추기 시작하는 것도 스캔들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 속도는 과거보다 빠르다. 부정평가 55% 돌파 시점은 취임 후 1년 3개월로, 박근혜 전 대통령(1년 11개월), 문재인 전 대통령(3년 8개월) 등과 비교해도 짧다. 윤석열(2개월)의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권력 누수가 빠르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번 정부는 검찰청을 없애고 대신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로 두면서, 사정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수사는 어느덧 특검이 하게 되었는데, 지금 같은 여권 초우위에서는 청와대나 여당을 겨냥한 특검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경찰의 수사 능력도 미지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캔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낙마는 전형적인 스캔들의 사건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내부고발자가 김승원의 장관 취임을 막기 위해서 그의 여러 비위를 확보해 다른 정치인들에게 넘긴 것이다.
스캔들이 발생하는 경로가 조금 바뀌었을 뿐, 권력이 강성할 때 눌러져 왔던 스캔들이 권력 누수가 시작되고 정권 내 갈등이 격화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승원 사건과 마찬가지로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사라졌지만, 그 대신 정치권의 폭로전 형태로 사건이 드러나는 방식도 빈번해질 것이다. 아울러 치안 공백과 수사의 적절성 문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여러 차례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찰 수사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재 권력의 힘이 빠지면 경찰 또한 눈치 보지 않고 칼을 빼 들 것이다.
2. 개헌 등은 지방선거 결과로 물 건너갔다고 봐야
청와대와 민주당은 개헌 추진을 국정 장악력 회복을 위한 기제로 삼으려 하지만, 개헌에 대한 동력은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하면서 사라졌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지지 세력이 없다. 개헌안의 가장 큰 문제는 강력한 지지세력, 그 구심점이 될만한 세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여론을 이끌 추동력을 갖기 어렵다. 두 번째 문제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 세력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헌은 권력 구조뿐만 아니라 나라의 근본 서사를 쓰는 작업이고, 이 근본 서사의 문제에서 보수가 동의할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조정식 국회의장 등 여러 민주당 정치인이 개헌안을 언급하면서, 대통령 연임도 가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운을 띄우는 등 이미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있다. 세 번째는 정치권에 마땅한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개헌과 반개헌으로 지지자와 반대자를 다시 구획화하고, 다수의 지지자 연합을 만들 수 없다면 정치인들이 나설 이유가 없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수도권과 영남에서 승리하고, 명실상부한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았다면 개헌에 대한 동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사실상의 패배를 당하면서, 반대파가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할수록 반대파의 결집 명분은 강해질 것이다.
개헌을 통해서 정계 개편을 노린다는 발상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다. 국민의힘 등에서 정치인들이 넘어오기 위해서는 개헌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명분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넘어온 이후 2028년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당선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개헌에 상대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의힘 의원은 부산 사하구 을이 지역구이고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은 조경태, 경남 양산시 을이 지역구인 김태호 정도다. 두 사람 모두 지역구가 민주당 강세 지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머지 의원들의 경우 민주당으로 굳이 이적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연임과 공소취소에 대한 입장 발표는 청와대와 민주당 친명계의 정무적인 역량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굳이 친명계에서 공소취소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거나 연임론을 띄우지 않아도 지방선거 패배로 이미 성패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희망적 사고와 정파적인 고려에 따른 무리수가 앞서면서 자승자박의 형태로 국면이 진행되었다. 개헌도 마찬가지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3. 정책전환: 예산안은 정해졌다. 행정조치로 돌파구 열까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정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부동산, 사회정책, 청년, 지방 등에 대해서 이재명 특유의 이익 분배형 정치를 재가동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사회정책 강화 방침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2027년 예산안은 이미 제출되어 있다. 여기에 새로운 사업을 끼워 넣을 만한 여지는 거의 없다. 그나마 정부가 재량권을 가진 미래대응기금이 있고, 청년·지방·성장동력·교육 등 4대 핵심 분야에 끼워 맞춘 지출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정책적 어젠다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재정 지출에 쓸 수 없다. 매칭펀드 형태로 집행하기에는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도 문제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는 예산안으로 뒷받침하는 새로운 정책을 펴는 데 심각한 제한을 안고 있다.
따라서 행정 조치나 입법 등을 통한 방법을 취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공정’ 어젠다처럼 대통령이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 여기에 맞춰서 행정 조치가 이뤄지고 지방정부, 공기업, 기업, 각급 학교 등이 움직이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예산의 뒷받침 없는 행정조치와 입법만으로 의제 전환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 수단으로 실제 유권자들이 체감가능한 의제를 만들 수 있느냐도 근본적인 제약 조건이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섬세하게 의제를 만들고, 입법을 통해서 조정하는 데 서투르다. 행정통합만 해도 목표했던 대전-충남은 무산되고, 광주-전남은 선거 이후 심각한 갈등을 낳고 있다. 오히려 선명성 경쟁 속에서 의제 관리에 실패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낮은 지지율에서 입법 등의 수단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외교나 남북관계에서도 성과를 낼 가능성은 낮다. 김대중이나 문재인 정부와 같은 정상회담의 시현 효과를 볼 여지는 작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 속에서 핵을 비롯한 군축 문제에서 합의점을 찾기도 어렵다. 이번 미국 순방에서는 상당한 기대를 하는 것 같지만, 군사적 긴장 강화 속에서 유화적인 태도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