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국민의힘 궤멸', 근본 문제는 지지자의 파편화에 있다

안녕하세요. 프로네시스리포트 조귀동입니다.

한국일보에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라 할 수 있는 지지자의 파편화에 대해서 썼습니다. 제목은 <'국민의힘 궤멸', 근본 문제는 지지자의 파편화에 있다(링크)>입니다.

요컨대, 국민의힘이 비상계엄 사태에 여전히 허우적대면서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보수의 내부 정치에서 다수 연합을 만들지 못하는 여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수 내 중도, 내지 중앙의 역할을 할만한 지지자 집단이 사라지면서, 강경 보수‧50~60대 중장년 여성‧20~30대 중산층 남성 등 제각각의 ‘본진’에서 뻗어나가 확장할 수 없는 여건이고, 상대방의 지지자들과의 연합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지지율이 낮다’가 아니라 ‘지지자 연합이 파편화되었다’라는 것이 진짜 문제인 것이죠. 지지율이 지금처럼 폭락한 것이 양적 축소라면, 서로 결합 불가능한 파편으로 쪼개진 것은 질적 해체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따라서 ‘보수 정치 리더들이 연대하면 된다’, ‘좋은 지도자를 뽑으면 된다’,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지금의 국민의힘에 대한 처방전은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실제 구현되기도 힘듭니다. 파편화가 핵심적인 문제라면 처방은 달라집니다.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흩어진 지지자를 다시 묶어서 보수 정치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나 세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초점이 옮겨집니다. 이 칼럼은 지금의 보수 정치권의 논의에서 문제 설정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번주 월요일 첫 뉴스레터로 보내드린 <[민주당 내부 투쟁의 이해] ⑴ 중첩된 이중권력, 그 특징과 기원(링크)>과 함께 읽으시면 두 정당 안팎의 정치 지형을 구조적으로 파악하고, 지금의 지방선거 캠페인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원문을 보시죠.


'국민의힘 궤멸', 근본 문제는 지지자의 파편화에 있다

[숫자로 본 대한민국] - 한국일보, 2026년 4월 16일

파편화된 보수진영 지지층
대표 4인, 결집 역량 부족
새로운 서사·의제 만들어야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짜 문제는 지지율의 절대 수준이 낮은 것에만 있지 않다. 지지자 연합이 해체되어 파편화되었다는 데 핵심 원인이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등 범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들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동향이 이를 보여준다. 이들 모두 파편화 그룹 중 일부의 지지만 확보하고 있을 뿐 그 확장성이 낮다. 그 결과, 그 누구도 보수 진영을 재편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는 정치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갤럽이 지난달 초 발표한 차기 지도자 선호 결과는 보수 진영의 이 같은 파편화 상황을 잘 보여준다. 장 대표는 '매우 보수적'인 집단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더 이상의 확장성이 없었다. 한 전 대표는 약간 보수적인 장노년, 특히 여성의 지지가 중심이었다. 오 시장은 수도권 연성 보수가 지지기반이었다. 이 대표는 20~30대 중산층 남성 위주였다.

이들의 공통된 문제는 각자의 지지기반 바깥의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서는 거센 비토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 전 대표의 경우 장 대표가 장악하려고 노력한 강성 보수는 물론, 20, 30대 남성 집단에서의 거부감이 특히 강하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다. 젊은 남성을 제외하면 그의 정치 기반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보수 유권자 집단이 없다. 지방선거 국면에서 뚜렷한 목적 없이 7일짜리 미국행을 택한 장 대표의 처지는 강성 보수 세력의 좁은 확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앙’ 또는 ‘(당내) 중도’라고 할 만한 지지자 집단이 사실상 붕괴됐다. 남은 것은 각각의 주변부 집단이다. 이들을 기반으로 할거하는 것이 '분파 경쟁'의 기본 양상이다.

여기서 핵심은 중도층의 ‘역할’이다. 중도층은 강성 보수, 연성 보수, 젊은 보수와 부분적으로 선호가 겹치는 집단이다. 교집합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들이 파편적 분파를 한데 엮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사라졌다. 다수 연합을 구성할 수 있는 접착제도 없어졌다. 오세훈·한동훈·이준석 연대 같은 기계적 결합이 설령 만들어진다고 해도 하나의 ‘연합’으로 제대로 기능하기는 어렵게 됐다. 결국 남은 건 각자도생뿐이다.

'보수 진영 내 중앙'이 사라지면서 본 선거 승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정당 내 경쟁은 당내 다수 확보(경선 승리)와 전체 유권자 내 다수 확보(선거 승리)라는 두 단계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중첩 게임이다. 2단계에서의 승리 전망이 있어야만, 1단계에서 승리할 수 있고, 그 승리가 유지된다. 그런데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다수 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보인 인물이 없다. 한 전 대표만 해도 부산 북갑 재보선에 출마한다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친한계 정치인 누구도 재보선에 나서지 않는다.

보수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을 확실히 장악한 세력이 없으니, 지방선거 이후 그 ‘빈 공간’을 누군가 쉽게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지지층이 파편화된 상황에서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도 어렵다. ‘절윤’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비상계엄을 옹호한 인물을 계속 중용하고, 주황색 넥타이를 매고 나와 개혁신당과 연대를 시사했던 장 대표식 정치공학이 실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이런 파편화를 극복한 경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새로운 지지자를 물리적으로 유입시키는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부산·경남이 보수 진영에 합류한 것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상징과 서사를 내세워 지지자를 다시 결집하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을 가지고 민주당을 장악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유력 보수 정치인의 성패는 그들이 파편화된 지지자를 하나로 묶을 새로운 서사와 의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지금처럼 누구도 그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지방선거 이후에도 국민의힘 안의 ‘빈 공간’은 승자 없는 공동묘지가 될 것이다.

조귀동 명지대 겸임교수·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


칼럼에서 미처 다 풀지 못한 맥락들

1. 파편화의 구체적 지형: 갤럽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

3월 초 갤럽의 차기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드러난 핵심은 각 지도자의 지지가 특정 인구학적 세그먼트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장동혁은 이념적 자기 평가에서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집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약간 보수적’ 집단으로만 가도 지지가 급락합니다. 한동훈은 50~60대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강하지만, 20~30대 남성에서는 적극적 거부감이 존재합니다. 이준석은 정확히 그 반대입니다. 20~30대 남성의 지지가 있지만, 50~60대 여성에게는 마뜩잖은 존재입니다. 오세훈은 수도권에서는 인지도와 호감도가 있지만, 비수도권이나 강성보수에서의 존재감이 약합니다.

갤럽 조사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비호감이 아니라 적극적 거부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가령 한동훈을 싫어하는 20~30대 남성은 별로가 아니라 절대 안 됨 수준의 반응을 보입니다. 이준석에 대한 50~60대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연대의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차단합니다. 한동훈-이준석 연대가 이론적으로는 연성보수 여성 + 젊은 남성이라는 넓은 연합을 만들 수 있어 보이지만, 기계적 연합 시도가 시너지 효과는커녕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두 집단에 속한 인물들, 그리고 지지자들이 가지는 상대방에 대한 비토 정서가 계속되고, 그게 자제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듯한 흐름이 나타나는 원인은 두 집단의 리더십 뿐만 아니라 지지자의 ‘선호’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중도층이 ‘접착제’였다는 것의 의미

칼럼에서 “중도층은 파편적 분파를 한데 엮을 수 있는 접착제였다”라고 썼는데, 그 의미를 좀 더 풀어보겠습니다.

각각의 소집단에는 ‘내가 수용 가능한 합의의 영역(윈셋‧win-set)’이 존재합니다. “썩 마음에 안들지만 이 정도면 집권이라는 대의를 고려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제나 정책이죠. 가령 강성 보수, 연성 보수, 젊은 보수 각각 윈셋이 있습니다. 중도층은 이들의 윈셋들과 제각각 겹치는 게 많은 집단입니다. 따라서 중도층을 매개로 해서 다수 연합을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중도, 내지 중앙이 사라지면 윈셋이 겹치지 않는 분파들만 남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수용 가능한 지도자, 노선, 분파가 없어지죠. 그래서 각 분파에 속한 인물들의 언어와 행동 방식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각 분파 내부에서 통용되는 상징, 언어, 논리 등이 상대 분파가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 되어가는 현상은 보수 파편화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습니다.

3. 보수는 무주공산이라는 생각의 맹점

이것이 보수 정치 내부가 텅 비어 있고, 그 무주공산을 차지하면 국민의힘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식의 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빈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은 비어있는 정치적 포지션을 차지하면 해당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보수 진영 내에서 ‘중앙’이나 ‘중도’가 사라진 상황에서 ‘빈 공간’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라, 그냥 그 땅 자체가 사라진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깃발을 꽂는다고 해서 보수 정치의 주도권을 쥐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4. 역사적 비교: 2000년대 후반 민주당과의 유사점과 차이점

칼럼에서는 분량상 빠졌지만, 현재 국민의힘의 상황과 200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의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의 상황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당시 민주당 역시 노무현 탄핵 이후의 정치적 격변, 중도층 이탈, 강경 진보 vs 비주류 온건파의 분열이라는 패턴을 겪었습니다. 누구도 당내 다수 연합을 형성하지 못한 채 수년간 표류했습니다. 이 파편화에서 재편까지 대략 5~8년의 침체기가 수반되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첫째, 당시에는 안철수라는 외부 행위자가 등장하고 비문계의 이탈이라는 경로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문재인과 친문이 민주당에서 리더십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문재인의 민주당 장악은 순수한 내부 역량만이 아니라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패배라는 외부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현재 보수 진영에서 이에 해당하는 외부 조건(이재명 정부의 심각한 실정 등)이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5. 보수 재건의 조건: '연합'을 재건할 리더십

결국 보수 정치가 재건 되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다수 연합을 형성하고, 보수 정당을 바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지방선거에서 보수 정당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선거 이후 보수 안에서 누가 비어 있는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비어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연합을 다시 만들 수 있느냐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는 지지자 연합을 새로 구축하거나, 아니면 분파를 초월한 상징적 자원이나 사건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두 경로 모두 지금으로선 쉽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