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당의 등장과 실패는 왜 필연적 패턴이 되었나
6.3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패자 가운데 하나는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이른바 ‘제3당’이다. 조국혁신당은 평택시을 선거에서 조국 전 대표가 3위로 패배하면서, 차기 대선 주자 레이스에서 조 전 대표가 탈락하게 됐다. 최근 그가 SNS에서 보이는 혼란스러운 메시지 난사는 그 여파다. 개혁신당은 기초의원 당선자가 1명에 불과한 데다, 광역단체장 후보도 득표율이 최고 4.3%(조응천 후보)에 불과한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개혁신당 역시 간판인 이준석 의원의 차기 대선 주자로서 경쟁력에서 노란색 경고등, 정확히는 빨간색에 가까운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이번 상황은 조국과 이준석이라는 정치인, 그리고 그들이 간판인 정당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⑴ 2010년대 이후 한국 정치에서 제3당의 출현은 일종의 상수가 되었고, 더욱 빈번하게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⑵ 아울러 제3당이 거의 예외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실패의 궤적을 그리고, 그 궤적이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즉 제3당의 출현과 위기에는 상당한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⑶ 하지만 제3당은 기존 정치 지형에서 이따금 분출하는 지질 현상일 뿐이고, 양당 체제의 강력한 구심력에 빨려 들어갈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제3당의 성공은 어떠한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후술할 내용을 미리 서술하자면 이렇다. 먼저 2011년 안철수 현상에서부터 2024년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의 성공은 양당 체제가 포섭하지 못하는 구조적 빈자리가 실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제3당의 실패는 조직과 노선(또는 이데올로기)을 갖춘 본격적인 ‘정치 운동’으로서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선거구제 같은 단편적인 제도가 아니라 신생 정당의 진입을 막는 카르텔 정당 체제 때문이다. 제3당은 이 카르텔 정당 체제를 깨뜨리는데 무관심해 왔다. 따라서 향후 제3당의 성공은 기존 정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리거나, 변형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제3당의 출현은 이제 상수다
2011년 이른바 ‘안철수 현상’부터 제3당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상수가 됐다. 2011년 등장한 안철수는 2011년 서울시장 선거와 2012년 대선에서는 유력한 무소속 후보였다가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계 후보에 자리를 양보했다. 2014년 지방선거 직전 민주당과 합당했고,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탈당‧창당해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21.4%를 득표하면서 완주했다. 그리고 2018년 바른미래당으로 합당하고, 2022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햇수로 11년 간을 제3지대에 있었던 것이다.
그 계보를 잇는 건 2024년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의 성공이다. 조국혁신당은 서울의 잘 교육받고 번듯한 일자리를 가진 이른바 ‘강남 좌파’, 호남의 민주당 이탈 유권자, 그리고 신도시의 30~40대를 규합해 비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개혁신당도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신도시에 거주하는 고소득-저자산 계층이 주력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준석은 이듬해 대선에서 35세 이하(1990~2000년대생)로부터 20%가 넘는 지지율(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을 얻으며 선전했다.
이렇게 제3당이 등장한 것은 양당이 포섭하지 못하는 빈자리가 실재하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세 집단이 있다.
첫째 20대에서 30대 초반의, 흔히 ‘청년’이라 불리는 유권자 집단이다. 이들은 무당파라기보다는 양당 모두 자신을 대표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도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식적 무당파 내지 비당파에 가깝다.
두 번째는 수도권과 광역시 외곽 신도시에 있는 고소득-저자산 유권자다. 소득 상위지만 자산 축적의 사다리에서는 배제된 이들이다. 이들은 ‘마포‧용산‧성동이 허락한 진보’인 민주당과, ‘강부자’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국민의힘 모두에 거리감을 느낀다.
세 번째는 전통적인 지역 기반 내부의 불만 세력이다. 2016년 국민의당과 2024년 조국혁신당이 호남에서 거둔 압승은 지배 정당에 대한 불만이 대안 세력에 대한 지지로 표출될 잠재력을 보여준다. 지난 지선 대구에서 김부겸 돌풍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양당의 전통적 갈등 축선이 포섭하지 못하는 유권자 집단이다. 그리고 양당은 지역 기반 등을 제외하면 사실 정책 차이가 크지 않고 문화적인 갈등 축도 강력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 결과 발생한 대표성의 공백이 제3당 지지로 이끈다. 이 공백을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메울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이 때문에 제3당 운동은 앞으로 계속 분출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공백’은 유동적이다: 네거티브 연합의 한계
문제는 이러한 불만으로 규합한 유권자가 그 자체로는 네거티브 연합에 그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용어를 차용하자면, 즉자적(in-itself‧卽自的) 유권자 집단이지 대자적(for-itself‧對自的) 유권자 집단으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이들을 묶는 정체성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제3당 지지는 기본적으로 양당 심판론, 좀 더 적확히 말하면 ‘반(反)○○당’-‘비(非)□□당’에 가깝다. 이들은 특정 국면에서, 적당한 정치적 분출구가 있다면 상당히 강력하게 결집한다. 하지만 명확한 정체성이 없어서 그다음 국면에서는 지지가 흩어진다.
그래서 제3당 후보는 그때그때 지지자 연합의 구성이 다르다. 안철수는 2011년 시작 당시 20~30대를 중심으로 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실망한 유권자를 기반으로 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당에 거리감이 있지만, 한나라당에 반감이 있었다. 그래서 2014년 김한길계와 손잡고 민주당과 합당했다. 그런데 2016년에는 민주당 내에서 ‘호남’을 기반으로, 수도권 중산층 중심의 ‘개혁 세력’에 반감이 있는 유권자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공천 등을 놓고 호남과 얼마나 큰 갈등을 빚었는지 돌이켜보면 놀랄만한 지지층 구성의 변화다. 그리고 2017년 대선에는 보수에서는 이탈했지만, 민주당에 표를 던지기 꺼리는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규합했다.
지지층 변화 폭은 상대적으로 작지만, 이준석도 마찬가지다. 동탄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 중산층 핵가족의 지지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대선에는 오히려 그보다 지지층의 연령대가 내려가, 20대 또는 30대 초중반이 주력 지지층을 형성한다.
실패의 원인: 조직과 노선의 부재
한국에서 제3정당이 실패해왔던 핵심적인 원인은 고정 지지층의 부재가 아니다. 원래 제3당은 기존 정당이 포착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유권자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유동성은 제3당 등장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문제는 양당이 포섭하지 못하는 유권자를 규합하고, 그들을 붙들어 맬 수 있는 ‘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과 노선이 없다는 데 있다.
원래 제3당은 부침이 심하다.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이건, 중선거구제나 비례대표제이건 모든 제3당의 기본 전략은 극심한 부침을 견뎌 내면서, 기존 양당 중 한 곳이 와해하거나 빈틈이 크게 생겨난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부침을 견딜 장치가 없다는 게 안철수의 국민의당, 그리고 지금의 조국, 이준석이 안고 있는 문제다.
한국에서 제3정당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노선이 없다는 것이다. 정당은 사회의 갈등에 기반하고,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지자를 모은다. 제3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양당의 갈등 축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 축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지자를 끌어모아야만 한다. 안철수의 ‘극중주의’가 실패했던 원인은 전통적인 양당의 중간 지점만 취해서 그저 ‘무중력’에 둥둥 떠 있는 유권자만 그러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층 조직은 안정적 지지 기반을 얻고, 지방자치단체에서의 지역 정치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긴요하다. 조직이 있어야만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노선(이념)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제3당은 단순히 의회 내 정당이 아니라 ‘운동으로서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력한 정치, 사회 운동에 기반한 정치 세력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소선거구제에서 가장 성공적인 제3당 사례인 영국 노동당을 보자. 노동당은 1900년 창당 이후 20~30년 만에 자유당을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2차 산업혁명 이후 대공장이 등장하고, 산업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난 것에 더해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구조적 변화가 그 배경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노동당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복지 사회’라는 비전을 제시했고, 노동조합이라는 기층 조직이 뼈대를 이루었다는 게 중요하다. 의회 진출 이전 지방자치단체부터 세력을 넓혔다. 노동당이 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한때 궤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의석수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조직과 노선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독일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녹색당은 반핵·환경·여성·평화라는 신사회운동의 기층 조직을 정당의 하부구조로 전환했고, 새로운 균열 축을 사민당보다 먼저 점유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녹색당도 1990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에 실패하는 등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이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조직과 노선에서 나왔다.
한국에서 제3당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카리스마적 개인에 의존하는 1인 정당이라는 점이다. 1인 정당이기 때문에 명확한 조직도 노선이 없다. 대신 정당 행동 원리는 시류에 대한 반응이 된다. 그래서 지지 기반을 계속 갈아타게 되고, 지지 기반을 갈아탈수록 정체성을 잃어간다. 지지자 연합의 유동성은 정당 자신의 유동성과 맞물린다. 이동하는 표를 붙잡을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정당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이후 제3당들이 내건 기치를 보자. 안철수의 ‘새정치’는 내용이 규정되지 않은 기표였다. 이준석의 정치는 특정 세대-성별 집단의 정서에 올라탄 단일이슈 전략에 가까웠다. 조국혁신당의 검찰개혁은 전통적인 범민주 진영의 ‘정서’를 증폭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정당 모두 기존의 거대 양당이 방치한 새로운 갈등 축에 기반해 정책과 노선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때그때 가장 많은 유권자를 붙잡을 수 있는 메시지를 내걸 뿐이었다. 이벤트를 좇아가는 캠페인 기구에 가까운 정당의 운명은 사실 꽤 분명하다.
문제는 소선거구제가 아니라 카르텔…
제3당은 여기에 무관심하다
보통 제3당이 실패하는 원인으로 소선거구제가 지목된다. 그런데 소선거구제 때문에 제3당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영국은 노동당부터 가장 성공한 제3당이고, 스코틀랜드국민당이 한 지역을 석권했다. 캐나다는 지금은 꽤 세가 위축됐다지만, 신민주당이 오랫동안 3당 지위를 유지해 왔다.
한국의 경우 소선거구제를 넘어서서, 양대 정당이 카르텔 정당화되어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 카르텔 정당은 주요 정당이 당원과 그들이 내는 당비가 아니라 국고 보조금, 미디어 접근권 같은 국가 자원에 의존하면서, 그들끼리만 경쟁하는 양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존 주요 정당은 그들끼리는 격렬하게 경쟁할지 몰라도, 새로운 정당의 진입을 막는 데는 공동 행보를 취한다.
한국의 정당 제도는 카르텔 정당 구조를 유지,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기존 정당들은 넉넉한 국고보조금에 의지하면서, 월 1000원짜리 당원들을 대거 모집해 일종의 ‘선거 플랫폼’ 역할을 한다. 대신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외부 조직의 정치자금 지원은 금지되어 있다. 먼저 지방의회 등 지역 정치에 참여하는 정당도 전국 정당이어야 한다. 지역 정치에서부터 조직을 만들어서 풀뿌리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막혀있는 셈이다. 2004년에는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지구당이 없어지면서, 원외 정당의 지역 내 활동은 사실상 봉쇄됐다. 전체 의석의 30%를 비례의원에 할당하는 대만과 비교해 절반 수준(15.3%)에 불과한 실정은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제3정당이 성장하는 경로는 대선 주자급의 유력 정치인이 창당해서, 인지도로 비례의원 몇 명을 확보하는 것 이외에 사실상 어렵다.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 경로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 제3정당이 정치 개혁 의제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선 투표제, 중대선거구제, 비례의원 확대 등 정치 개혁 의제는 단순히 유리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거대 양당의 카르텔 구조를 깨기 위한 핵심 의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개혁 의제로 종합선물세트처럼 제기되는 수준에 그쳤을 뿐, 그것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관철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나 전략이 없다. 1990년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가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내걸고 단식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지’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 개혁 의제는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군소 정당들의 의제에 가까웠다. 그리고 민주당은 정치개혁 의제를 이들 정당을 관리하는 주된 수단으로 삼아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그리고 비례위성정당을 통한 우당(友黨)을 만들고 의석을 배분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제3당이 정치개혁 의제에 무성의했던 건 필연적인 구석이 있다. 명확한 조직과 노선이 없고, 대선주자급 유력 정치인 한 명에 의존하는 정당이 장기간에 걸쳐 정치 구조를 바꿀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정당은 그때그때 시류에 맞춰 지지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 가면서 유력 정치인의 대선 주자로서 잠재력을 키워주는 것, 즉 카르텔을 혁파하는 게 아니라 카르텔에 들어가는 게 오히려 목표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제3당은 실패할 것인가? 그것은 알 수없다
그렇다면 제3당, 정확히 말해 제3당 운동은 계속 등장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인가? 그리고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그대로 계속 ‘고난의 행군’을 계속할 것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먼저 양대 정당이 포섭하지 못하는 유권자 집단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주류의 정당이 됐다. 또 국민의힘의 기반은 위축되었고, 보수 지지층은 파편화됐다. 따라서 대표성의 공백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기성 정치 바깥의 에너지도 상당하다. 지금은 성조기가 펄럭이는 극우 시위가 되었지만, 올림픽공원 시위의 초기 국면이 보여준 20~30대의 불만은 언제든 정치적 동원으로 불붙을 수 있는 거대한 불만을 시사해 준다.
결국 문제는 이러한 에너지를 ‘운동으로서의 정당’으로 변환할 수 있는 행위자가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 문화, 그리고 정치 전략의 수준으로는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정당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기존 제3당이나 제3당의 유력 정치인의 변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성공하는 제3정당은 먼저 즉자적 유권자 집단을 대자적 유권자 집단으로 전환할 수 있는 노선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운동’을 만들 수 있는 조직과, 대중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이념과 메시지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지도자’는 필요하지만, ‘지도자 1인 정당’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양당의 카르텔적 정치 질서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이를 와해시킬 수 있는 의제화가 필요하다. 정치 개혁은 주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으로서 가능성이 높은 것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형태다. 보수 지지층의 파편화와 20~30대의 ‘진보’와 ‘80년대 학번-60년대생’에 대한 반감이라는 재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문화전쟁류의 전략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으로는 소선거구제하에서 중도 유권자까지 포섭해 유의미한 지지율을 획득하기 쉽지 않다.
2028년 총선과 2030년 대선을 향해 가는 동안, 제3당의 공간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새로운 변화와 성장에 성공한다면 전통적인 양당 구도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