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진짜 호남 문제: 민주화 '상징'과 사뭇 다른 '실제'
역대 민주당 정부 가운데 이재명 정부 만큼 호남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과거 민주당 주류에 대한 호남의 ‘반란’(2016년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은 집권할 수 없는 민주당 주류 세력에 대한 불신임에 가까웠다. 아울러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혐오 표현 논란, 광주·전남 지역에 신규 반도체 생산기지 건설에 대한 반발 등 호남에 우호적인 행보가 전국적인 정치 문제가 된 적도 사실상 처음이다.
이재명 정부가 겪는 곤란은 보수 세력의 반발 때문이라거나, 여전히 수면 아래 깔려 있는 전라도 차별 정서 때문이라던가, 거꾸로 이재명 정부의 지나친 정치화 때문이 아니다. 여기에는 좀 더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호남 밖의 사람들이, 호남을 주요 권력 기반으로 삼고 정치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그리고 그들이 파트너로 삼는 ‘호남’은 전체 유권자 집단이 아니라 지역 내부에서 민주당 기반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층부다. ‘기층’과 괴리가 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현 상태의 호남’을 그대로 인정하고, 지역 권력 구조를 강화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민주화의 성지를 핵심으로 수도권의 정치 엘리트들이 바라보는 호남과 실제 호남과의 괴리가 민주당의 ‘진짜 호남 문제’인 것이다.
중앙의 시각: 티 나게 챙겨줘야 하는 ‘민주화 성지’
이재명 대통령, 그리고 친명계에게 호남은 티 나게 챙겨주어야 하는 민주화의 성지다.
1. 왜 적극적으로 챙기는가
앞선 뉴스레터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계는 다양한 민주당 비주류들이 결집한 연합군에 가깝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이 대통령은 하층 노동자, 자영업자로 일하던 호남 이주민이 만든 성남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기반에 대해 좀 더 명확히 말하면 호남이 아니라 이주민에 방점이 찍혀있다.
민주당 비주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초중반 이른바 ‘난닝구’라 불리는 호남 기반 세력이 나온다. ‘천신정’이라 불리던 천정배(목포), 신기남(남원), 정동영(순창)의 출신지가 전라남북도인게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80년대 학생운동 엘리트 출신인 ‘빽바지’-‘친문’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주류에 치어 살았다.
이재명은 민주당 내 승리 연합의 유지를 위해서는 광주/전남이나 전북에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결속력 강화를 위해 그들의 역사성이나 가치관을 긍정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챙겨 주어야 하는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왜 티 나게 챙겨주어야 하는가
호남을 챙겨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최대한 티 나게 챙겨주어야 한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되 그들이 호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새 반도체 생산 시설과 관련된 문제다. 사실 호남이 받는 건 용인과 평택 일대의 반도체 공장을 조기 완공한 뒤, 다음번 생산 시설을 지어주겠다는 먼 미래에 대한 ‘수표’이지 ‘현찰’이 아니다. 그런데도 호남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발표의 순서와 상징 때문이다. 충북의 패키징 시설이나, 영남권 투자가 먼저 언급되었으면 논란이 적었을 것이다. 특히 영남권 신규 투자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독립적으로 먼저 발표해도 되었을 사안이다. 이재명 정부에서 호남 반도체 투자의 1차 기능은 그 지역을 무리를 해서라도 챙겨주고 있다는 ‘신호’다.
3. 비호남의 호남 챙기기: 민주화 서사의 핵심 문제
호남 아닌 사람들이 호남을 대변하는 구조가 한국 민주화 서사의 핵심에 있다. 80년 광주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도덕적 분노를 촉발하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이 주류가 되면서, 호남은 그들의 정당성을 책임지는 존재가 됐다. 게다가 민족-반민족 구도가 불가능해지면서, 더더욱 독재-반독재의 중요성은 커졌다.
결국 ‘호남 혐오에 대한 반대’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도덕적 자격 증명으로 기능한다. 강성 보수에서 나타나는 5.18에 대한 공격만큼이나, 상당수의 호남 혐오에 대한 반대도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현실과의 괴리: ‘민주화 모독’ vs. ‘인종 차별’
수도권 민주당이 필요로 한 것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상징이다. 민주화의 성지를 모독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하고, 다시는 그런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발언이 수위 경쟁을 하면서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실제 호남이나 호남 출신자가 겪는 건 사실 인종 차별에 가깝다. 필자가 <전라디언의 굴레>에 썼듯 호남인은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아프리카계 이민자 지위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까지 명시적인 형태로 나타난 데서 알 수 있듯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5.18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일베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변형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 인종 차별 행태를 시정하는 방식과, 민주화의 성지를 모독하는 행위를 규탄하고 처벌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세계 계열사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이벤트나 배재고 야구부의 5.18 조롱 구호 등은 결코 그들을 일벌백계하는 식으로 없어지지 않는다.
지역 거버넌스의 문제: 일당 초우위가 낳은 ‘무능의 도시’
민주당이 직면한 호남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분은, 지역의 거버넌스가 후진적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초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견제나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단순히 정치의 문제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중간계층의 양과 질이 두텁지 못하고,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민도 극히 적다. 따라서 사회의 다원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다. 이는 민주당 초우위와 맞물려 거버넌스의 후진성을 낳게 된다.
반도체 생산기지 논란에서 물을 어떻게 공급할 건가는 주요한 이슈다. 그런데 광주는 2023년 심각한 가뭄을 경험했다. 30년 만에 제한 급수를 실시하기 직전까지 갔다. 1991년 주암댐 건설 이후 새로운 상수원이 확보되지 않았던데다, 정수 시설이나 수도관이 낡은 게 근본 원인이었다.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수도관에서 물이 새는 비율인 누수율은 6.8%로 특별시·광역시 중 가장 높았다. 광주시(당시 시장은 강기정)가 사이버 기우제를 지내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빈축을 샀다가, 정수장의 낡은 밸브가 터지면서 쑥 들어갔다.
이 지역 용수 공급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섬진강권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영산강 수계에서 댐이나 저수지를 건설하자는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9년 가뭄 때도, 2023년의 가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광주는 2025년 심각한 홍수 피해도 입었다. 광주는 습지와 하천을 메워 건설한 곳이라 상습 침수 구역이 꽤 있다. 이 문제를 등한시하다가 신안동 등(예전에 강기정 시장이 3선 의원을 한 곳이다)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사실 복개한 하천을 복원해 물이 흐르게 하는 게 구조적 해결책이고, 다른 지역에서는 서울 청계천이 대박을 친 뒤 지자체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실제로 사업 사례도 많다. 도시 미관, 보행로 확보 및 상권 부흥 효과 등이 명분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정비하는 데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다. 토호나 조직이 있는 실력자를 붙잡는 게 우선인 광주의 지자체 입후보자 입장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게 이 지역 하천 복원이 더딘 이유다.
광주의 가뭄과 홍수 문제는 지역의 일당 초우위가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재를 만들고 생산하는 정치가 아니라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의 정치인, 정당 조직, 토호를 바라보는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아가 누구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니 우리들이 열심히 하겠다는 허망한 결론이 도출된다. 책임성과 반응성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광주, 나아가 호남은 거버넌스의 무능함이 도드라지는 지역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것을 해주면 해줄수록 거버넌스의 무능함은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앙일보 칼럼(광주가 '반도체 정치'를 넘는 길)이 잘 짚었듯, 반도체 생산 시설 문제는 호남 문제에서 새로운 도전이나 다름없다.
민주당의 파트너: ‘호남’이 아니라 ‘호남 기득권’
민주당이 호남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라지만, 실제 그들이 대표하는 것은 지역의 토착 엘리트와 개발 이익이다. 실제 ‘유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이 그다지 보장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그들을 대변하는 세력이 아니라고 느끼는 경우까지 발전하곤 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21년부터 전남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태양광 발전소는 농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주축으로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농민들이 반발한 이유는, 이들이 차지농이기 때문이다. 농촌의 부재지주들은 그동안 농민들에게 땅을 빌려주어 왔고, 농민들은 경작지를 늘려서 기계화된 영농으로 채산성을 맞춰왔다. 그런데 부재지주들이 태양광 발전소를 짓겠다고 나서면서, 또는 낮은 염해농지 기준을 이용해 간척지를 매입해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하겠다는 업자들이 나서면서 일종의 현대판 ‘엔클로저’가 발생하게 됐다. 전라남도가 공격적으로 추진한 풍력발전도 어민들의 상당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지주와 개발업체, 진보적인 시민들에게는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지역의 농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 기반을 빼앗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이 2024년 10월 전남 영광 재보선에서 나타났다. 민주당 후보(장세일)가 41.08%로 2위 진보당 후보(이석하, 30.72%) 대비 11%포인트 격차 밖에 나지 않은 것이다. 영광은 원자력발전소 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 비중도 대단히 높은 곳이고, 농민회 세력도 강하다. 2024년 재보선 결과는 ‘기층’의 불만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기치 않은 ‘오작동’과 ‘마찰’ 이어질 것
이러한 여러 이유 때문에 이재명 정부의 호남 정책, 그리고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호남 관련 이슈에 대한 대응은 의도한 결과를 낳지 못할 리스크가 상당하다. 그리고 상당한 반작용을 불러올 수 있을 가능성도 높다.
가령 차세대 반도체 생산 기지의 경우, 이재명 대통령이 공언하는 것과 달리 그의 임기 내에 사업이 진척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 구축이다. 용수와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신규 시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건설 과정은 계획뿐만 아니라 착수 단계에서도 많은 ‘마찰(군사학에서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게 되는 여러 요인을 가리키는 용어)’에 부딪힐 것이다.
공항, 도로, 철도 등의 교통망, 정주 여건도 마찬가지다. 서남권에 반도체 생산 시설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무안공항이 화물기를 띄울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으면 안되고, 경기 남부와 광주를 잇는 철도와 도로를 신설하거나 대대적으로 개보수해야한다. 정주 여건은 더욱 문제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광주시가 책임져야하는 주거 지원을 아직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2025년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나서서 “그간 지연돼 온 광주형 일자리 노동자 주거 지원에 대해 해법을 마련했다”고 발언했지만, 광주글로벌모터스 노조는 지난달에도 “ GGM 설립 당시 광주시가 약속한 주거 지원과 복리후생 확대, 교육 지원 등이 6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장기 리스크: 한국판 북부 동맹의 등장 가능성
민주당의 호남 이슈가 초래할 가장 큰 리스크는 수도권의 반발이다. 이미 이탈리아에는 동맹(Lega)라는 사례가 있다. 이들은 부유한 북부가 가난한 남부에 퍼주는 중앙정치에 반발해서 등장한, 북부 지역주의에 기반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특히 집권 기독교민주당(DC)은 이른바 ‘남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1950년부터 30여 년간 운영된 남부개발기금(Cassa per il Mezzogiorno)이 대표적이다. 기민당에 남부는 주요 표밭이었고, 중앙정부 재원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 돈은 지역 정치인과 토착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 주로 쓰였다. 게다가 북부에서 기민당의 기반이 사라지면서 남부 출신 정치인이 거꾸로 득세하게 되고, 그 때문에 남부에서 기민당 지지가 늘어나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1991년 움베르토 보시가 결성한 북부동맹(Lega Nord)은 ‘로마 도둑(Roma ladrona)’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우리가 낸 세금이 로마를 거쳐 부패하고 무능한 남부 엘리트에게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남부의 거버넌스 실패가 북부 반발의 정당성을 만들어 준 것이다.
민주당의 호남 정치가 실패한다면, 그 결과는 호남 혐오의 재정치화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호남에 퍼준다는 서사가 ‘부패하고 무능한 호남에 퍼준다’라는 서사로 발전해서 다시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 기저에 상당한 호남 차별과 호남 혐오를 연료로 삼아 번져나갈 것이다. 지금과 같은 민주당의 정치 행태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리스크는 여기에 있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