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프로젝트: 이재명의 이익분배형 정치와 국토개조 계획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회장과 함께 앉아있다. /청와대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는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가 정책 기조를 보여주는 이벤트다. 아울러 이재명 대통령의 공세적 국정 기조 전환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의 세 분야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투자는 그 자체로서도 상당한 정치적 효과가 발생한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어제 보고회의 정치적 의미와 영향을 분석한다.


기재부 조정국의 일화

필자가 기획재정부를 출입했을 때, 문재인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가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현 경제성장전략)에서 ‘야마(신문사에서 기사의 핵심 내용을 의미하는 은어, 일본어 やま·山에서 유래)’ 중 하나는 기업 투자였다. A라는 기업이 B라는 지역에 ○○조원을 투자하고, 그것을 위해서 정부가 □□ 등의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는 식이었다. 정부 사업도 아니고,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사업도 아니지만, 각 부처 간 업무 조율 기능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정책조정국이 쓸만한 아이템을 선별해서 내놓는 일을 맡았다(현재 정책조정국은 이재명 정부에서 신설된 혁신성장실 산하에 있다).

주객전도에 가까운 상황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기업 투자 확대야말로 가시적인 경제 성과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부의 정책 계획이 아니라 기업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효과다. 기업 투자 계획 발표는 해당 시설이 들어가는 지역이나 연관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결국 정부가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문재인 정부 사례를 들었지만, 다른 정부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시기가 갈수록 경제정책방향에서 조정국의 비중은 커졌다. 정부가 재정이나 세제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기업은 덩치가 커지면서 홀로 수조, 수십조원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함께”: 집권 중반기 대통령의 지지율 방어 수단

대기업, 정확히는 재벌과 함께하는 행보는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중반기를 맞아 펼치는 기본적인 초식이다. 지지율 방어에 이만큼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지지율 하락이 본격화되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민이 깊어진다. 정치적인 자본이 사라지는데, 이를 만회할 수단이 뾰족이 없다. 그리고 정치 행위가 대개 A라는 이득과 함께 B라는 손실 또는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과 달리, 대기업과 함께하는 행보는 손실이 거의 없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10월 문재인 대통령, 정의선 당시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공장을 빈번하게 방문했다. 산업 현장을 챙기고, ‘재벌 총수’와 만나는 모습이 지지율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재벌 총수들을 대거 동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9일 이재명 대통령의 3대 메가프로젝트 보고회는 꽤 보편적인 대통령의 통치 행보이자, 전략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투자 규모와 속도가 이전과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대규모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익분배형 정치

어제 발표는 이재명의 통치 전략의 핵심인 ‘이익분배형 정치’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재명은 개별 유권자 집단의 이해관계에 제각각 반응하고, 그들에게 이익을 배분해 주는 방식으로 지지자 연합을 구축해 왔다. 인구집단, 계층, 직능 및 이익단체에 공공자원을 배분해 주거나, 배분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방식이었다. 지방자치단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흔히 나오는 포크배럴(pork barrel·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정부 예산이나 이권 등을 나눠주는 것) 정치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전면에 내세운 것이 이 대표 정치의 특징이다. 그가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먹사니즘’은 이익분배형 정치를 압축한 표현이다.

다른 민주당계 대통령과 비교해서 이재명 정부에서 이익분배형 정치가 도드라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정통성이 없는 비주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일종의 민주당 적통론을 내세우면서 비명계를 결집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 두 번째는 그에게 거대 서사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익을 반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세 번째는 민주당 자체의 문제다.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주류 정당이 되었고, 지지자 연합의 이질성은 커졌다. 민주화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념 대신 ‘이익’을 부각하는 것이다.

광주·전남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 거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가장 큰 정치적인 이유는, 결국 호남에 적절한 이익을 배분하지 않으면 지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북에 패키징 등 메모리 후공정을 짓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구성 /중앙일보

사실 이재명 정부의 이익분배형 정치를 잘 보여주는 모습 중 하나가 고위직 인사다. 29일 발표에 나선 김정관 산업부 장관(장성·광주일고), 김윤덕 국토부장관(부안·전주 동암고) 등이 호남계다. 김용범 정책실장(무안·광주 대동고)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호남 출신 관료들은 차관급이었고, 호남계 정치인의 장관 비중도 작았다. 장관급 직위는 언론 노출 빈도가 높고 재량권이 많아 정치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다. 그 기회를 굳이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장관급 직위를 주어도 권한이 강하고 자율성이 있는 자리는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들에게 장관직을 배분하고 자신들의 우군으로 삼는다(참고: 이재명 정부 1기 '호남대' 약진). 일정 정도 친명 엘리트 집단이 양적, 질적으로 협소한 상황에서 나온 선택이긴 하지만 호남계를 배려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여건의 산물이다.

실제 계획:
경기 남부의 투자 속도전, 호남은 ‘제2의 새만금’ 리스크?

실제 계획을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⑴ 평택, 용인 등 경기 남부에서 진행되는 반도체 생산 시설(팹) 건설을 극단적으로 가속한다. 정부는 5년 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 능력을 2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건설 중인 용인 클러스터의 완공 시점도 삼성 7년, SK 12년씩 앞당긴다. 삼성은 2030조원, SK하이닉스는 600조원을 밀어 넣는다.

⑵ 그러고 나서 다음번 생산거점을 호남에 짓는다. 삼성과 SK가 각각 2기씩 팹을 건설한다. 투자 자금은 800조원이다.

⑶ 나머지 지역에는 기능별로 산업을 분배한다. 충청권에는 81조원을 투입해 후공정 패키징 거점을 키운다. 전북과 대구/경북은 피지컬AI와 로봇 산업을 육성한다. 동남권·대경권은 소재·부품·장비 혁신 거점이 된다. 데이터센터는 SK가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 5개 거점에 기가와트급으로2 깐다.

29일 발표한 삼성과 SK의 투자 계획 /중앙일보

이 계획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의 두 가지다.

⒜ 확실한 것은 경기 남부에 일종의 투자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용수, 전력 등의 공급이 더 이상 물리적으로 어려운 경기 남부 대신 광주/전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경기 남부는 두둑한 ‘현찰’을, 호남은 사실상 ‘수표’ 내지 ‘어음’을 받는다.

⒝ 그리고 광주/전남의 생산거점 구축 계획이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생산 시설을 지을 강력한 정치적 압력이 가해질 수도 있다. 일종의 ‘제2의 새만금 리스크’를 잠재적으로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져보면 국토개조 계획

보고회는 산업정책의 외피를 쓰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이냐는 따져보면 국토 개조 계획에 가깝다. 물, 전력, 도로, 공항 등 각종 인프라는 물론 정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신도시, 교육, 의료 등은 정부와 공기업이 나서야 한다. 특히 충청에서부터 새만금을 거쳐 광주나 장성으로 이어지는 서남권 반도체 벨트 구상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전제로 한다. 용인의 투자 속도전도 마찬가지다. SK가 발표한 AI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다. 영남권에 건설할 소재, 부품, 장비 혁신 거점이나 피지컬AI, 로봇 거점도 그러하다.

3대 메가프로젝트 지역별 계획 /조선일보

앞으로 발표할 구체적인 계획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계획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대규모 SOC 건설이 이어질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SOC 건설이 취소될 가능성은 낮다. 지역의 이해관계자가 확고한 사업이고, 근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재원으로 조달되기 때문이다.

세수 증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이번엔 투자, 다음은?

정부가 이번 계획을 입안한 배경 중 하나는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날 세수를 어디에 쓸 것이냐는 문제일 것이다. 선택지는 셋이다. 먼저 늘어나고 있는 국가 채무를 갚는다. 두 번째는 기본소득 같은 분배 정책을 추진한다. 그리고 세 번째가 투자다.

이번 계획에서 눈여겨 볼 것은 SOC 투자를 위한 특별회계의 설치다. 처음에는 2조원 규모지만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그리고 광주/전남 행정통합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제공되는 20조원 규모의 지원은 상당 부분이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에 쓰인다. 당시 발표에서 대통령은 지방정부의 재원 부담을 언급했지만, 실제 지자체 세입 구조를 뜯어보면 중앙정부의 지원 내지는 국세 세입의 증가분이 재원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당시 10대 기업의 법인세 비중과 국세 세수 증가율. /조귀동, 한겨레21

반도체로 늘어난 세수를 반도체에 쓰겠다는 계획은 합리적이고 건전하다. 그리고 그것이 인프라 건설에 쓰이는 것도 논리적인 귀결이다.

그런데 숨은 의제는 그렇게 지출하고도 남는 돈을 어디에 쓸 것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투자’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다른 부문에 돈을 지출해도 정치적 부담이 적다. 이번 발표가 기본소득, 기본금융 등 이재명표 정책을 위한 예비 단계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상당한 이유다.

정치적 이득: 호남 지자체장의 입장이 되어봅시다

이번 보고회의 정치적 이득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앞서 언급한 대통령 지지율 제고다. 두 번째는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투자를 통한 고용 창출이다. 세 번째는 민주당 내에 이재명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령 호남의 지자체장, 특히 광역지자체장 입장을 생각해보자. 그는 현재 친청계로 갈아타고 싶어하고, 또 친청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부가 향후 몇 년간 대규모 SOC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이상,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업적과 재선 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이상 친청계 색깔을 내기란 어렵다.

그리고 당 대표 경선에서 이재명의 핵심 메시지는 ‘대통령과 당이 분열‧대립하게 만들 대표인지, 아니면 원팀(one team)으로 정권 재창출을 하고 지금의 이익을 계속 향유하게 만들 대표인지’를 묻는 것이다.

정치적인 리스크: 예상보다 작을 것

정치적인 리스크는 생각보다 작다. 무엇보다 경기 남부에 확실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투자는 충청권도 적잖은 수혜를 받는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있는 아산, 삼성SDI가 있는 천안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후공정 투자 계획 대상지일 청주는 서남권보다 더 빨리 투자가 집행될 것이다. 즉 충청권까지 두둑한 ‘현찰’을 쥐게 된다.

호남은 미래의 ‘수표’를 받기 때문에 상당한 리스크가 있다. 하지만 이 지역도 수혜를 받는다.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되기 위한 대규모 SOC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남권 반도체 생산기지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치적인 리스크의 핵심은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주는 것에 대한 타 지역의 반발, 그리고 해당 사업이 '제2의 새만금'처럼 될 수 있다는 리스크다. /MBC캡처

물론 영남, 특히 대구‧경북은 상당한 불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산업단지가 심각한 박탈감이나 반발을 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예정되어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카드는 여럿이다. 가령 올 연말 내지는 내년 초 즈음에 대구공항 이전 사업을 화끈하게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남권 반도체 생산 거점 논란은 결국 미래의 반도체 팹을 호남에 지을 것이냐, 아니면 영남에 지을 것이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전력이나 용수 문제를 감안하면 용인, 평택 등과 인접한 충청권에 신설하는 건 현실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청권도 이번 사업에서 충분한 떡고물을 받아 간다. 이 지역 입장에서 남부로 공장이 내려가는 게 나쁜 일도 아니다.

보수의 문제: 대안은 무엇인가?

국민의힘 등 보수에서는 이번 계획에 비판적이다. 특히 호남에 반도체 팹을 내려보내는 것을 문제 삼는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차기 반도체 생산거점이 민주당 본진에 설치되는 것만큼 정치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킬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정부와 민주당은 예산을 분배하고 사업을 계획, 집행하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몫’이지 남이 얼마나 이득을 보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가 ‘호남 반도체 공장 이전 비판’이 안고 있는 약점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 구도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 구도다.

언제나 문제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갤럽의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추이. /갤럽

대통령 지지율은 회복 가능한가?

간단히 이야기하면 그렇게 녹록지 않다. 먼저 대규모 토목 사업을 하면 고용이 증가한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사업이 진행되는 건 빨라도 2~3년 뒤다. 그전에는 삼성과 SK의 경기 남부~충청 권역 투자가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정도다. 무엇보다 3년 정도 뒤에 반도체 경기나 한국의 경제 여건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하다.

결정적으로 지금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인 격차 확대는 불황이 아니라 호황에서 온다. 반도체가 초호황을 맞을수록 대통령 지지율의 하방 압력은 커질 것이다. 이 것이 이재명 정부의 이번 발표안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모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