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의 위기: 통치술과 이데올로기의 한계
민주당, 나아가 ‘민주’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사회 세력은 명실상부한 주류다. 정치적으로는 수도권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는 다수당이고, 시민사회를 차지하고 있으며, 50~60대 초반으로 거의 모든 조직에서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고학력·고소득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민주’ 진영의 통치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압도적인 명분과 세력으로 출발했지만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친문’이라는 집단은 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잃었고, 지금도 이렇다 할 대선 후보가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한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 세력, 과거의 ‘비주류’였던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비상계엄 사태로 집권했지만, 집권 1년 반이 되지 않아 국정의 통제력을 잃고 있다.
통치술이 없고, 통치역량이 부족한 게 근본 문제
이렇게 민주당, 이른바 민주·진보 진영(앞으로 ‘민주’ 세력이라 서술)이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라 부를만한 통치술 측면에서 심각한 결함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라 부를 수 있는 세계관 측면에서도 더 이상 2026년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정치 세력이 주류가 된 뒤, 성공적으로 국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의 7가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과 실행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것이 되지 않는 정치 세력이다.
① 어떻게 개별적인 사회집단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을 것인가? (대표성)
② 어떻게 개별 집단들에게 양보를 얻어내면서 더 큰 목표에 결집시킬 것인가? (통합)
③ 어떻게 반대 세력을 때로는 당근으로 때로는 몽둥이로 상대하면서, 그들에게 동조하던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인가? (포섭)
④ 어떻게 사회의 ‘중심 집단’에게서 지지를 얻어낼 것인가? 중심 집단은 지배층이 아니라,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투표소에서도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도시 중산층이다. (실질적 다수)
⑤ 어떻게 자신들의 목표를 사회 전체의 목표로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지도력)
⑥ 어떻게 위에 언급한 5가지 과업을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내고 실행해 성과를 만들 것인가? (실행)
⑦ 어떻게 이 일을 맡을 엘리트층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충원할 것인가? (엘리트 양성)
“좌아하게”, ‘손가락 혁명군’으로의 회귀
6월 지방선거 이후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지금의 민주당이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 중도층이 이탈한 결과다. 그리고 그들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불신한 것은 여러 차례 지적했듯 이재명 정부가 ‘자기편’만을 챙기는 통치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먹사니즘’이나 ‘뉴이재명’을 이야기하면서 이익 분배 중심의 정치와 중도·보수 통합을 내걸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이익 분배인지, 사회 전체의 목표가 제시되지도 못했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인 이익이 되는지도 설득력 있는 서사와 정책 기제를 제시하지 못했다. 중도·보수 통합에 걸맞은 인물과 세력을 흡수하는 대신 화끈한 진영 논리를 내걸었다. 지지자 연합 내부에서 개별 집단의 양보를 얻어내면서 더 큰 목표를 달성하는 행태 대신, 개별 집단의 이익을 더욱 티 나게 챙겨주는 행태로 일관했다.
이런 방식의 통치가 사회의 ‘중심 집단’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 패배에서 드러났다. 실행 능력의 결여나, 새로운 정치 엘리트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도 명확히 보여주었다. 앞서 제시한 7가지 통치술의 구성 요소에서 심각한 결함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까지 했다.
문제는 지지율의 위기에 봉착해서 이재명 대통령,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이 대통령의 행보는 그가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 그가 그의 성공 방정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지자 결집과 진영 구도의 창출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대통령이 특정 정치 고관여층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좌아하게’라는 커뮤니티 은어를 사용하는 식의 메시지를 계속 내는 이유다. X(옛 트위터)에 ‘폭풍 트윗’을 남기는 것도 과거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지지자 결집은 단순히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지율 하락에 뒤따르는 여당 장악력 약화에 대응해, 당내 투쟁의 전선에 지지자 집단을 호출하는 것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민주’ 세력 내부에서의 투쟁이 먼저인 것은 다른 정치 세력에 구심점이 없고, 특히 비명계가 시끄럽고 산발적인 저항 이외에는 이렇다 할 ‘정치적 대안’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 당내 쟁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요컨대 후방의 게릴라가 정규군으로 발전하기 전에 꺾는 것이 우선이란 얘기다.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둘러싸고 사법부와 일전을 준비하고, 각종 ‘개혁’ 의제를 꺼내 드는 것도 당 밖의 사안에 대해서는 ‘손가락 혁명군’에서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동원과 전쟁의 정치, 포퓰리즘적인 행태를 반복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이 대통령의 행보는 계속해서 ‘민주’ 세력의 통치술 부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과 문재인, 모두 ‘통치술’이 없었다
좀 더 자세하게 7가지 항목에서 이재명 정부의 통치술이 갖고 있는 문제를 논의해 보자.
① 대표성
이재명 정부는 자신의 지지층에게는 확실한 개혁이나 이익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지층 바깥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의 대통령’이었지만, 실제로는 ‘우리 편의 대통령’이었다.
② 통합
지지층들에게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그들에게 얼마간의 양보나 타협이 필요하다고 설득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오히려 지지층들에게 즉각적이고, 파격적이며, ‘다른 집단보다 당신들을 더 챙겨주고 있다’라는 신호를 주는 데 주력했다. 검찰 개혁이나 호남 반도체 이슈의 공통점은, 장기 집권에 필수적인 핵심 지지층의 양보나 인내 대신 그들의 즉각적인 ‘사이다’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③ 포섭
반대자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최소한 중립화하려는 시도도 게을렀다.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의 문제는 선언에 그쳤다는 것이다.
④ 실질적 다수
서울의 50~60대 고소득-고자산 집단을 제외하면 이재명 정부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은 없다. 이것이 주가 부양 정책을 필두로 한 이재명식의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정책의 문제다. 금융자산 보유의 심각한 격차 속에서 주가 부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집단은 한정되어있다. 무엇보다 40대 이하의 고소득-저자산 집단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가장 분노하는 집단이 되었다. 평범한 ‘서민’이라 할만한 이들은 노동시장 위축, 임대료 상승 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⑤ 지도력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한국 사회 일반의 비전과 일치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점점 앞세운다는 인식만 강해졌다.
⑥ 실행
무언가 ‘지르는 것’은 거창했다. 전쟁의 비유를 차용한 3대 메가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검찰 해체도 화끈하게 달성한 목표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①~⑤ 사항을 달성하는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지르는 정책들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구체적인 실행 능력도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상당한 역풍을 맞는 것이 적잖다.
⑦ 엘리트 양성
이재명 파벌에 대해 ‘장교단 없는 백만 대군’이라는 비유를 들어서, 대통령 한 명만 돌출되어있는 취약한 구조임은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핵심 엘리트 집단을 늘리려는 의식적인 노력도, 새로운 엘리트를 육성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로지 기존의 파벌 내부 인사이더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관성만 유지, 강화되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어떠했나? 방향이 약간 달랐지 거의 모든 사항에서 결격 사유를 보였다.
① 대표성: 문재인 또한 ‘우리 편의 대통령이었다’
② 통합: 장기 집권에 필수적인 핵심 지지층의 양보나 인내는 여기서도 없었다. ‘우리가 주류다’는 자신감과, 그에 맞춘 적폐청산만이 존재했다. 그들의 즉각적인 ‘사이다’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③ 포섭: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의 각 국면에서 두드러진 것은 끊임없이 ‘적’을 창출해 내고, ‘적’을 몰살하거나 내몰아내는 방식의 정치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④ 실질적 다수: 이른바 ‘조국 사태’의 문제로 민주당의 진보적 가치 독점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대 이하 고소득-저자산 계층의 이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대거 국민의힘 단체장이 당선됐다.
⑤ 지도력: 적폐청산이라는 구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한국 사회 일반의 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데 있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정 슬로건 대신 ‘갈라치기’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었던 것이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가속화했다.
⑥ 실행: 이재명 정부와 마찬가지로 ①~⑤ 사항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실행 능력은 없었다.
⑦ 엘리트 양성: 지난 7월 지적한 바 있는 민주당 정치 엘리트의 노쇠화가 시작된 시점은 문재인 정부부터라 할 수 있다.(관련 글: 민주당의 근본 문제, 정치 엘리트 충원이 안 된다)
검찰개혁 이후엔 무엇을 할 건가?
‘민주’ 세력의 통치술의 부재, 내지는 부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항이 있다면 바로 검찰개혁이다. 검찰은 이제 해체라는 형태로 개혁되었다. 정청래 전 대표의 표현으로는 70년 숙원이 해소된 것이다. 이제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이 질문이 핵심인 것은 검찰개혁은 ‘민주’ 진영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권력기관을 통제하자는 제도적 요구,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 조국 사태 때의 억울함, 이재명 수사에 대한 분노가 함께 실렸다. 서로 다른 요구와 감정이 검찰이라는 적 앞에서 하나가 됐다. 정치 이론가 라클라우가 ‘빈 기표’라고 부른 역할을 한 것이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은 사실 어느 하나의 명확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민주’ 진영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제외한 영역에서 거의 모든 요구가 집약되어 있는 어젠다였다. 사회 전체의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개혁은 목표의 대용품이기도 했다.
이제 적은 사라졌다. 적이 사라지니, 검찰개혁이라는 강력한 의제를 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비슷한 ‘적’을 새롭게 공급한다. 보완수사권 폐지, 법원행정처 폐지, 조작기소 특검법, 대법원장이 차례로 호명된다. 김민석 대표는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가 사법개혁의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새로운 적이 검찰을 성공적으로 대신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익 분배형 정치, 먹사니즘의 경우 ‘사회 전체의 목표’가 없다. 소비쿠폰,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주가 부양은 각각의 이해관계자 집단을 향할 뿐 그것이 하나의 단일한 지지자 연합,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저 요구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그리고 목소리가 큰 순서대로 응해줄 뿐이다.
방향 없는 분배는 세 가지 결과를 낳는다. 먼저 받은 쪽의 지속적인 지지층이 되지 않는다. 연금과 같은 제도와 달리 일회성 지원금은 끊임없이 그것을 챙겨주지 않으면 끝난다. 두 번째는 받지 못한 집단의 반발이다. 세 번째는 개별 집단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분배하는 정치가 필연적인 지지 연합 내부의 이익 분배 요구 경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서 호남 문제는 이익 분배 정치의 문제가 지역 단위에서 나타난 쇼케이스다. 시작은 행정통합이었다. 행정통합은 각 소지역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대도시 중산층의 반발이 높기 때문에 충청권에서는 바로 무산됐다. 정치적 저항이 작은 광주-전남만 빠르게 통합됐다. 하지만 그것은 통합의 문제를 미뤄둔 것에 불과했고, 지방선거 이후 지역간 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민형배 광주전남특별시장의 지지율도 급전직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광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3대 메가프로젝트’의 핵심 의제로 삼았다. 이 발표가 없었다면 ‘호남’의 현지의 핵심 의제는 민주당이 주도한 행정통합이 얼마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지가 되었을 것이다. 정부는 빠르게 반도체 공장 건설을 주문하지만, 해당 사업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여당 안에서도 용수와 전력 공급, 인허가 간소화,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지르는’ 데까지가 이 정부의 실행이다. 아울러 호남만 티 나게 챙겨주는 행보는 다른 지역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지층이 되지 않는다. 연금처럼 제도화된 권리는 그것을 지키려는 집단을 만들지만, 일회성 지원금은 받는 순간 끝난다. 받지 못한 쪽은 등을 돌린다. 지난 4월 갤럽 조사에서 '과도한 복지와 민생지원금'은 부정 평가 이유 2위였다. 그리고 집단들은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저쪽이 받았으니 우리도 달라는 것이다. 가장 큰 분배인 주가 부양의 과실이 자산을 가진 쪽에 몰리는 구조에서는 이 비교가 더 날카로워진다.
암살자(들)과 이병한, 이데올로기적 위기
통치술의 결함과 부재는 ‘민주’ 세력의 이데올로기가 한계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세계관의 위기는 통치술의 부재가 단순히 기술적인 보완이나 실행능력의 강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민주’ 세력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정상화’를 목표로 삼는 정치세력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그러했다. 무언가 독재라던가, 아니면 부패한 엘리트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일본과 그에 결착한 친일파 등 외부요인 때문에 지금의 국가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는 세계관이다. 거꾸로 외부요인을 제거하면 국가는 정상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민중’ 내지는 ‘시민’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이 세계관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외인으로 규정된 무언가를 척결하는 것이 바로 정상성을 획득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둘째는 본인들이 ‘정상적인 것’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선취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보편성이 있다는 자기규정이다. ‘비정상의 사회’ 대 ‘정상을 지향하는 운동’의 대립 구도였던 셈이다. 이러한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식 대 비상식, 민주 대 독재, 개혁 대 적폐라는 구도가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더 이상 ‘비정상의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세계관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됐다. 민주세력 스스로가 국가의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주’ 세력의 세계관은 크게 세 가지 시도를 한다. 먼저 여전히 국가가 부패한 엘리트에 의해서 장악되어있으며, ‘민주’ 세력은 이제 겨우 정치 권력을 손에 쥐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딥스테이트’에 맞서서 ‘영구혁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검찰 개혁, 언론 개혁이 끊임없이 추진되면서 적폐 세력, 내란 세력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그들을 타도하는 게 지상과제가 된다.
두 번째는 이 ‘딥스테이트’가 국가를 여전히 장악하고 있고,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부패한 엘리트의 비정상성, 그리고 그들이 왜 민중의 ‘진짜 동의’ 없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특히 유권자를 동원해내고 그들을 설득하는 좌파식 대중 정당 정치가 아니라, 시작부터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시민’을 구분하고 순수한 시민이 왜 이해할 수 없이 패배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김어준식의 정치 담론은 음모론이나 탈사실적 서사에 더 친화적인 성격을 갖는다.
세 번째는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회고다. 1987년 당시 한국전쟁보다 2026년의 6월 항쟁이 더 과거의 일이지만, ‘민주’ 세력은 끊임없이 과거의 비정상적인 국가를 다루는 서사를 개발하고 유통한다. 구매력 있는 중산층이 민주 세력의 주력이기 때문에, 그것은 상업적인 경쟁력도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비상업적인 영역에서 인정받기도 쉽다.
하지만 ‘주류’가 내세우는 자신의 세계관의 위기에 대해 대응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반발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폭발한 것이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일 것이다. 영화는 구체적인 책임 소재는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1974년 육영수 피살 사건에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의 의중이 상당히 깔려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당시 박정희 독재의 비정상성, 그리고 부패한 엘리트의 행태라는 주제를 음모론적 서사로 만들어낸 것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민주 언론을 위한 노력과 투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전통적 서사가 아니라 ‘딥스테이트의 음모’에 저항하는 ‘시민’으로서 다시 주조된다. 거칠게 말해 과거사 문제를 끌고 와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음모론 서사는 2010년대 이후 ‘민주’ 세력의 표준적인 세계관을 영화라는 형태를 빌려서 표출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발도 다분히 현재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다른 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을 통해 소개하고, 매불쇼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 이병한씨의 세계관이다. 이병한씨는 JTBC가 7월 보도한 임금체납 및 투자 사기 의혹 사건으로 공적 영역에서 돌연 퇴장했다. 하지만 그전까지 이병한은 민주당의 새로운 이데올로그로 성장해왔다. 그가 낸 책들은 줄줄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는 ‘민주’ 세력이 키워내고 있던 새로운 대안이었다. 2023년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가, 9시간 만에 사의를 표한 이래경씨의 뒤를 이어 <다른백년> 이사장을 맡은 것이 대표적이다. 민변과 참여연대 등의 민주진보 인사들도 이병한의 후원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시민의 알릴레오나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서 비중 있게 다뤄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발언은 ‘파시즘’에 가깝다. “K-민주주의 운운하는 심각한 자아도취도 하루빨리 깨어나는 편이 이롭다”, “노동이 사라져가는 디지털 문명에 민주주의 또한 20세기처럼 작동할 가능성은 0에 수렴”,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계산한 결과를 조율하는 형태로 정치의 프로세스”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제국적 아우라를 풍기는 도시”, “한국을 제국으로 만든 일곱 개의 별” 등의 민족주의적인 수식어, ‘개벽학자’라는 자기 규정이나 천부경 같은 유사 역사학의 수용도 파시즘의 필수 요소를 골고루 담고 있다.
지난 6월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발언한 다음의 부분은, ‘민주’ 세력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내부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방증할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위기에서 자신감을 잃고 있는,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비자유’민주주의에 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민주’ 세력의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직 어디에서도 새로운 리더십을 뽑아내는 제도를 발명해내지 못했다. 한국은 이제 그걸 해야 한다. 한국 말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 그런 걸 하겠다는 리더십이 한국에서 나오면, ‘한국에서 저런 리더가 나왔다’고, 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전 세계인들이 한국에 선거운동하러 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를 더 낫게 해보겠다는 국민적·시민적 에너지가 굉장히 많은데, 그 에너지를 미래로 과감하게 열어줘야 한다.”
- 이병한, 미래학자 겸 개벽학자 겸 지구학자. 2026년 6월 11일 <최욱의 매물쇼> 발언을 발췌한 뒤 이어 붙인 것.
‘민주’의 위기, 근본적인 직시가 필요
이재명 대통령의 급격한 지지율 하락으로 촉발된 국정 통제력 상실은, 통치술의 부재라는 구조적인 원인에서 기인한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 세력의 세계관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에서부터 위기는 시작됐다. 이는 단순히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고 해서, 그리고 진짜 개혁적인 세력이 새로운 비주류로 성장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위기가 위기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국민의힘이라는 보수 정치 세력 또한 같은 문제를, 더 빨리 겪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의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직시와 총체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집권은 가능하지만 통치는 불가능한 정치 세력에 더 이상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