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형 개각’의 문제…‘피벗’ 없이 지지율 반등 없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문책 인사다. 재정경제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장관 인사가 해당한다. 두 번째는 ‘우리 진영’ 내부의 지지 기반 확대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으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정무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은 이해민의 청와대행(行)의 부산물에 가깝다. 세 번째는 이소영, 하정우 등 우리 편 유망주를 육성하는 인사다.

특히 이해민에게 차관급 수석 자리를 준 것은 조국혁신당 소속 의원을 분할해서 흡수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재보선 평택을 패배 이후, 당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030년 대선에서 독자 노선으로 지지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아예 합당하겠다고 나서더라도, 소속 의원을 개별적으로 빼갈 수 있다는 것을 보인 민주당을 상대로 조국혁신당은 ‘당 대 당’ 합당에서 소수 정당이 가지는 레버리지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용혜인의 입각은 2028년 총선에서도 비례위성정당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포석이면서, 해당 정당이나 진보 쪽 정치인들에게 독자 노선을 걷지 않으면 추가적인 보상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바둑으로 읽기: 중원이 밀리니 내 집부터 지킨다

바둑으로 빗대면 이번 개각은 일종의 ‘농성(籠城)형 개각’이다. 바둑에서는 ‘중원’이라 불리는 바둑판 가운데에서 큰 싸움을 벌이는 대신, 네 모서리(귀)나 테두리(변)에서 기존에 쌓아 올린 집을 단단히 하고 허물어지는 것을 막는 것을 ‘농성’이라고 한다. 세력을 키우는 대신 실리를 챙기면서 방어에 나서는 것이다.

농성형 바둑이 불리한 수는 아니다. 하지만 농성으로 이기는 데는 조건이 있다. 이미 확보한 집이 상대보다 크고, 중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작을 때다. 반대로 확보한 집이 부족하고 상대방의 세력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농성은 패배로 바로 이어지게 된다. 상대의 세력권에 깊숙이 뛰어들어서 상대의 집을 깨뜨리는 타개(폭파)가 필수적으로 되는 이유다.

이번 개각은 우리 진영을 단단히 지키겠다는 청와대의 의중을 분명히 보여준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돌풍이 보여주듯이, 이재명 또는 친명계에 우호적인 리더가 차기 정권 재창출을 이끌지 못한다는 의구심이 커진다면 호남이나 수도권에서 대안을 찾아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또 차기 총선에서 탈락한 이들이 탈당해 조국혁신당으로 모여서 ‘따로 또 같이’를 내걸고 생환에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비명계에서 구심점이 될만한 세력이나 인물을 최대한 줄이고, 포섭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이 지금의 상태로는 큰 위협이 될 수 없거나,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전제, 즉 ‘지금의 국민의힘’을 상수로 놓는 판단이 2028년 총선에서도 먹히느냐다. 한번 심판 정서가 형성되면 야당의 상태는 오히려 부차적인 변수가 된다. 또 보수 진영 내에서 ‘이번 수도권 선거에서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수도권 경쟁력이 높은 인물로 지도부를 물갈이할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가령 오세훈이나 한동훈의 대선 후보 적합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졌을 때 장동혁 체제가 받는 사퇴 압력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중원’에서 밀릴 경우 농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통령 지지율 반등의 정치학: 네 개의 사례

관건은 개각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하느냐다. 민주당은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두 사례가 의미하는 것은 일시적인 정치적 기동으로 반등에 성공한 지지율은 필연적으로 빠르게 다시 무너진다는 것에 가깝다. 반대로 이명박 정부의 사례나 미국의 클린턴 1기처럼 안정적인 반등에 성공한 경우는 구체적인 국정 운영 노선의 변화가 동반되었다.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정 기조의 ‘전환’과 이를 토대로 한 중도 지지층의 확보가 있어야만 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 당시 상정한 비즈니스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고, 사업 전략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피벗(pivot‧ 사업 방향 전환)’이라고 한다.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이 턴어라운드하기 위해서는 피벗이 중요한 것처럼, 대통령 지지율 회복도 피벗 없이는 불가능하다.

⒜ 김영삼: 공세적 이벤트로 약점 극복

김영삼 정부는 경이적인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우루과이라운드 쌀 시장 개방 파동,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해 1995년 6월 첫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김영삼을 위기에서 구해 준 것은 그해 10월 박계동 의원이 폭로한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다. 김영삼은 이를 공세의 지렛대로 활용한다.

11월 노태우가 구속됐고, 김영삼은 5·18 특별법 제정을 전격적으로 지시했다. 그해 7월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것을 뒤집은 것이다. 그리고 12월 전두환도 구속되었다.

김영삼의 이 같은 전격전은 3당 합당으로 군부 후계 정당에 올라탔다는 약점을, 전두환과 노태우를 청산하면서 메꾼 행보다. 그리고 독재 잔재 청산이라는 야당의 의제를 빼앗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 관리 능력이 주된 의제가 되었던 정치 국면을, 군부 독재 청산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승리하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끌어올린 지지율은 1996년 다시 급격히 하락했다. 무엇보다 이벤트에 따른 것이어서, 지지자 연합이 확장되거나 재구성되는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법 날치기, 한보 사태, 김현철 게이트가 줄지어 이어졌다.

⒝ 김대중: 외치에서 초대형 성과

김대중의 지지율은 1999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2000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등 카드는 외치(外治)에서 초대형 성과였다. 그해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에서 대통령이 외교, 안보 이슈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성과였고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해 10월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이어지면서 지지율 상승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2001년부터 다시 지지율이 빠르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 효과는 김정일 답방 무산 등 후속 성과가 없었다. 대북지원 논란 등 역풍이 불 게 됐다.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투표에서 자민련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DJP연합은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지지율도 다시 하락하게 됐다. 외치의 성과가 내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빠르게 사그라든 것이다.

다만 김대중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핵심은 IMF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성과였다. 지지율은 낮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당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 민주당은 명확히 자신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 이명박: 제6공화국에서 가장 성공한 반등 사례

성공의 기준을 반등의 지속과 정권 재창출로 놓으면, 이명박은 제6공화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인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발화된 대규모 시위(이른바 촛불시위)로 이명박의 지지율은 취임 석 달 만에 10%대까지 추락했다.

지지율 반등은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위기 관리에 성공하고, 경제 대통령이라는 자기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성과를 보인 것이다. 두 번째는 2009년 하반기의 노선 전환이다. 중도 실용과 친서민을 전면에 내세웠다, ‘좌클릭’ 노선을 취하면서 중도 집단을 폭넓게 끌어오겠다는 전략이었다. 불평등 문제를 강조해 왔던 경제학자면서 충청권 출신인 정운찬을 총리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패배 직후 ‘공정한 사회’를 내세우면서 동반성장, 특권 청산 등 진보 친화적 의제를 선점하고 나섰다. 이는 지지율 누수를 막기 위한 행보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초반 지지율 급락 속에서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국면에서 고정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해서 중도 유권자를 모으고, 최소한 그들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의제를 전환했다. 선거 패배 이후 오히려 공세적으로 상대 진영 영역에 가까운 의제를 끌어오면서 지지율 관리에 나섰다. 이것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배경일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촛불 시위 이후 강하게 결집한 반대파의 결집력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이명박이 안고 있던 도덕성 논란은 끊임없이 지지율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좌클릭’ 이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노선은 ‘기회는 공평하게, 결과는 책임지게’라는 보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복지나 노동시장 영역에서 이명박 정부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 그의 지지율 상승은 어찌 본다면 민주당 진영의 지리멸렬함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 상당했다고 할 것이다.

⒟ 클린턴 1기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미국 민주당은 40년 만에 상·하원을 모두 잃으며 참패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재선은 불확실했다.

빌 클린턴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이른바 ‘삼각 전략(triangulation)’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제와 모두 거리를 두고, 양쪽에 대항하는 세 번째 극점을 자신의 포지션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의제를 선점하되, 클린턴식으로 이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복지 개혁과 균형재정 공세에 대항해 클린턴은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1996년 연두교서)’라며 차별성을 없앴고, 동시에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와 정책 대결을 하면서 깅리치 지도부를 과격파로 몰아갔다. 공화당의 복지개혁법에 대해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자신이 주장한 문제점을 쳐낸 뒤, 세 번째 법안에 서명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민주당이 갖고 있던 비호감 요소와 거리두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두 번째는 소규모 생활 친화형 공약을 내세워 중산층 유권자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이다. 교복 착용 권장, TV 폭력물 차단 V칩, 청소년 통금, 담배 광고 규제, 학교 총기 규제 같은 미시적 ‘가치 의제’를 대거 내세웠다. 의회를 통한 입법 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회 동의가 필요 없고 공화당이 반대하기 어려운 상징 의제로 대통령이 일상의 문화적 불안에 응답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아울러 ‘사커맘’이라 불리는 교외 중산층 여성 등 중도적인 유권자를, 여론조사를 통해서 세분화한 뒤 각 집단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의제까지 만들어냈다.

클린턴의 전략은 특수한 상황의 산물이다. 삼각전략의 전제는 분점정부다. 의회에서 미국 민주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정당에서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클린턴의 전략은 대통령 개인의 생존 전략이지 정당의 지지자 연합 복원 전략이 아니다. 지금의 이재명 정부와 한국 민주당이 안고 있는 문제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다만 클린턴의 지지율 반등이 새로운 노선과 이를 지지할 유권자 집단을 발굴하면서 가능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피벗에 성공할 것인가?

대통령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는 것은, 결국 피벗에 성공한 경우다. 위의 네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노선 전환

지지율이 하락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하는 일, 그리고 그 성과에 대해서 불신하고, 나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한 지지자를 다시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노선 전환이 필수적이다. 노선전환 없는 이벤트 효과는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 공격 포인트를 없애고 의제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것

의제 주도권을 빼앗아 오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 평가의 잣대를 자신이 주도권과 강점이 있고, 자신이 정한 의제로 옮겨와야 한다. 아울러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는 소재를 선점해서 그 효과를 없애야만 한다.

㈐ 포섭가능한 유권자 집단의 식별

이탈한 유권자 가운데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집단을 식별하고, 그들을 유인할 의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중도’로 묶을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소집단별로 그들이 왜 이탈했고, 어떤 생활 속의 니즈가 있고, 어떠한 정책과 의제에 지지를 보낼 수 있는지 식별해야만 한다.

㈑ 단발성 정치 이벤트 지양

단발성 이벤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지지율은 그만큼 쉽게 사라진다. 상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구체적으로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의 의제 없이는 지속적인 지지율 유지는 어렵다.

농성형 국정운영은 성공할 수 있는가?

30일 개각은 위에서 언급한 네 요소 중 무엇을 담고 있는가. 먼저 노선 전환의 신호는 없다. 국토부장관 후보로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도 도시주택실장을 지낸 홍지선 2차관을 지명한 게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공격 포인트 제거와 의제 주도권 탈환도 없다. 이번 인사가 제거한 것은 상대의 공격 소재가 아니라 왼쪽의 결집 가능성이다. 중도층 포섭은 더더욱 아니다. 이탈한 중도 유권자가 입각 명단을 보고 정치적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없다. 남은 것은 지지층 결속뿐이다.

지난 10일 뉴스레터(대통령 지지율 급락의 구조적 원인과 대응 방안)에서 지적했듯,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편’만 챙겼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핵심 집권 전략은 일종의 이익 분배형 정치인데, 그 대상은 민주당의 주력 지지층인 상위 중산층, 민주당 내 다수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호남 등 ‘우리 편’ 위주였다. 중도층 내지는 4~5년 단위로 지지 정당을 옮기는 일종의 ‘구조적 스윙보터’층의 이탈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개각 이후 지지율 반등을 노릴만한 수를 준비하고 있는가? 고위직 인사야말로 국정 기조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렌즈다. 지금처럼 ‘우리 편 챙기기’, ‘고정 지지층 이탈 리스크 단속’에 집중되어 있는 고위직 인사로는 유권자의 정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 이번 개각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 기조 전환에 나설 의향이 없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원에서 밀리면 농성은 무의미하다. 유권자의 인식을 뒤집을 수단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가 지지율의 추가 하락이냐, 반등이냐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