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공원 시위는 왜 1980년대 NL 운동을 닮았나
청년들의 반체제 ‘정동’
부패한 ‘네이션’에 대한 반감이 핵심
80년대 ‘강철서신’ 등장 직전 닮아
정치운동으로 발전 양상 주목해야
6월 3일 지방선거 이후 가장 주목해야 할 사회 현상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벌어진 재선거 요구 시위다. 지금은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 투표 수개표”의 구호가 잠식한 공간이 되었지만, 6월 3일부터 4~5일 정도는 사뭇 풍경이 달랐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 게시물을 보고 모인 20~30대, “재선거”라는 소박하지만 명확한 전략적 의도가 있는 구호, 장노년 참가자들에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오면 안 되는지 시위장 입구에서 교육하는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새로운 운동의 태동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들을 단순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강경 우파의 영향권 안에 놓인 이들로 보면 안 된다.

오히려 이 사건이 가장 닮은 것은 1980년대 초중반 민족해방(NL) 운동이 태동하던 국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대규모 운동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는 사건에 가깝다. 그리고 그 운동이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는 건 80년대 학번-60년대생들이 주류가 되어 주도하고 있는 지금의 ‘체제’가 될 것이다.
새로운 ‘네이션’에 대한 요구, ‘힙’으로 인식되다
올림픽공원 시위는 본질적으로 ‘네이션(nation)’이라 할만한,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해서 묻고 있는 시위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엉망진창인 선거 관리가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것을 주로 지적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주장하는 바는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공동체를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요구는 SNS에서 전혀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던 20대들, 인플루언서거나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 대중의 ‘팔로잉’을 끌어모으던 이들이 공유하고 주장하는 바가 되었다. 이들에게 올바른 정치에 대한 요구는 새로운 ‘힙(hip·유행을 선도하고 멋지다)’으로 인식되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망 사고 시위와 닮은 점과 차이점
이 점에서 올림픽공원 시위는 단순히 20~30대가 인터넷을 통해 모여서 정치적인 시위를 벌였다던가, 그들이 이전에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었던데 새롭게 각성했다던가, 그리고 더 이상 ‘진보’의 영향권에 있지 않고 오히려 ‘보수’의 자장에 놓여있다는 것 이상의 사건이다.
비정치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는 대중이 인터넷을 통해 모여서 정치적 집단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2002년 미군 장갑차 압사 사고 시위(이른바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 시위)와 닮았다. 그리고 ‘네이션’을 말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당시 시위를 제안한 것은 ‘앙마’라는 닉네임을 쓰던 학원 강사 김기보씨였고, 참가자들은 전통적인 집회의 문법에 거부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깃발 내려’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모 시위가 정치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민족, 사회운동 세력은 상당한 기여를 했고 이들이 조직적인 역량을 제공하면서 장기화됐다. 그리고 시위의 양식은 정형화되고, 참석자들은 그 문법을 학습했다. 2016년이 되면 참석자들이 알아서 깃발을 들고 모여 ‘천하제일 깃발대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하지만 2002년 추모 시위와 2026년 재선거 시위에서 네이션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르다. 2002년의 네이션은 이전부터 형성된 민족 공동체에 가까웠다. 그 민족 공동체의 주권이 외부(미국)에 의해 침해되고, 순수한 국민이 희생됐다는 도덕적 분노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분출된 에너지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라는 정치적 출구로 분출했다. 1980년대 시작된 반미 정서, 그리고 정치적 동원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올림픽공원 시위가 주장하는 ‘네이션’은 내부에 의해서 훼손됐다. 그것은 ‘부패한 엘리트’를 겨냥한다. 그 대척점에 서 있게 될 ‘순수한 민중’에 대한 규정은 이제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출구는 필연적으로 지금의 엘리트들에 대한 반대로 분출할 것이다. 새로운 이념과 운동의 태동일 수밖에 없다.
반체제, 반기성세대 운동으로서의 NL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회운동은 1980년대 NL(민족해방) 운동이다. 보통 NL 운동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해방자’에서 ‘압제자’로 바뀌면서 분출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된다. 그리고 ‘강철’ 김영환이 수입한 주체사상으로 반제·자주·통일 구호를 외치고 민족주의, 대중노선, 품성론으로 무장한 NL이 대학가를 휩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NL을 광주라는 정서적 공감과 강철이라는 이론적 토대가 하나의 일관된 지점을 향해 발전한 운동으로 보기 어렵다. 사실 NL 운동의 주된 정서는 기성세대가 갖고 있던 반공적 세계관에 대한 반대였다. 그리고 ‘잘못된 네이션’으로서 독재 정권을 ‘올바른 네이션’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네이션을 만들어 낸 ‘구조’로서 미국이 호출된 것에 가깝다.

NL 운동이 발전하게 된 순서를 봐도 마찬가지다. 미 문화원 방화, 폭파, 점거 사건(1980년 광주, 1982년 부산, 1983년 대구, 1985년 서울)이 가장 먼저 있었다. 문부식이 주도한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은 물론이고, 1985년 삼민투위를 주축으로 함운경을 비롯한 73명이 서울 미 문화원을 점거한 사건은 ‘반공과 친미의 세계’에 대한 반대였다. 문부식이 1999년 당시 사건에 대해 “부미방은 영웅적 행위도, 좌경 불순세력의 무모한 반역행위도 아닌, 5공 정권이 주도한 거짓의 역사를 지탱하는 부역의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한 당대 젊은이들의 움직임 중 하나”라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처음 대중적으로 터진 반미 운동인 서울 미 문화원 점거 농성은 ‘광주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미국은 한국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엉거주춤한 입장이었다.
1986년께 결성된 NL의 대중조직인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이를 지도하는 정치조직인 구학련(구국학생연맹)의 모습을 봐도 체계적인 이념과 전략을 갖춘 혁명조직이라고 보기에는 엉성하다. 5월 자민투는 북한 단파 방송을 듣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들이 발행하는 잡지, 심지어 대자보를 통해 이를 소개했다는 혐의로 곧장 검거 대상이 되고 다수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3월 결성된 구학련은 ‘혁명적 대중조직’(RMO, Revolutional Mass-Organization)‘을 표방했지만, 결성 현장에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일 정도로 보안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한미군 철수를 슬로건으로 내놓을지 말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이념적 통일성도 약했다. 같은 해 8월 구학련 사건 당시 검찰은 “조직원 모두가 이적 사상에 완전히 물든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핵심 조직원들에 대해서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발표했고, 핵심 조직원도 반국가단체 구성이 아니라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적용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NL의 핵심 정조(情操), 요즘 유행하는 개념으로 정동(情動, affect)이라 할만한 것은 ’이 체제는 근본부터 틀렸다‘라는 반사적 거부였다. 그래서 NL은 출발부터 반체제·반기성세대 운동이었다. 기성세대가 떠받든 반공의 네이션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자리에 올바른 네이션을 세우려 한 세대의 반항이었다.
강철서신이 처음 나온 1986년, 한국전쟁은 36년 전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20대에게 1987년 6월 항쟁은 39년 전 일이다. 80년대의 20대들이 부패한 기성세대의 반공· 친미적 세계관에 대해서 적대감을 느끼는 것 못지않게, 오늘날의 20대들 또한 기성세대가 된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민주화 세계관‘에 대한 적대감을 갖는 게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그들에게 ‘민주화 세대’인 80년대 학번이 주류가 된 지금의 네이션이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게 올림픽공원 시위로 폭발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이유다.
‘공정’과 ‘상식’, 20대의 네이션
그렇다면 올림픽공원의 시위대가 만들려는 새로운 네이션의 정초는 무엇인가. 바로 공정과 상식이다.
공정은 이들의 공적 발화에서 중심 개념이 된 지 오래다. 대치동이 정점인 교육 시스템의 핵심이 ‘규칙의 공정성’이다. 젊은 세대가 공정함을 이야기할 때 실시된 대담 조사에서 “공정한 절차는 시험이 절대적이라고 본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정량화된 기준이 시험밖에 없다”, “그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되는 경험이 없는 거다”고 말한 게 이를 잘 보여준다. 기성세대가 물려준 사회에서 합의된 가치가 희소하고, 공동 해결책의 모색이나 타협이 어려운 저신뢰 사회의 유산이기도 하다.
젠더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다. 지난 2020년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관련 논쟁 당시 진보 성향 여성 인터넷 커뮤니티 <여성시대>에서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시스템에 따른 죄밖에 없는데 그 어른들이 이젠 나보고 적폐래” 등 정규직화 대상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 글이 호응을 얻었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입시에서 실제로 규칙을 이용하거나 때로는 적극적으로 해킹하는 노력이 경주되는 것처럼, 규칙의 공정함이란 ‘극복’ 내지 ‘이용’의 대상이다. 나아가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바뀌고, 때로는 집단행동을 통해 변경할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규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치열한 공적 투쟁의 의제가 된다. 가령 누군가가 규칙을 해킹했을 때,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반칙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할지는 향후 게임의 틀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어떤 집단의 행위가 무임승차인지 아닌지에 대해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이들과 대비되는, 열심히 규칙을 지키는 이들은 피해자로 규정된다. 공정이나 페미니즘과 관련된 청년들의 논쟁이 늘 피해자와 가해자로 양분되는 데에는 이러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무엇이 ‘공정’하느냐에 대한 ‘상식’은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면서, 동시에 치열하게 공적 투쟁이 벌어지는 전장이다. 공정함을 위반하는 사태가 즉각적으로 공적 의제가 되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공정’이란 대원칙을 해치는 건 바로 기성세대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서 자원 배분의 규칙을 해석하고, 때로는 바꾼다. 비단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라는 ‘집단’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사회운동의 초입
‘재선거’ 구호가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로 대체되기 직전인 7일 시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모습은, 이번 시위가 대규모 사회운동의 초입임을 시사하는 징후들이었다.
첫 번째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네이션’에 대한 강조와 희구다. 2000년대 초중반 진보 진영이 외쳤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조문은 이제 그들을 거부하는 20대의 구호가 되었다.
두 번째는 사회운동의 방법론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구호를 재선거 하나로 좁혔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부담 없이 참석해서 태극기를 그리고 재선거 구호를 쓰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그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관여도를 끌어올렸다.

세 번째는 참석자, 특히 부정선거를 외치거나 성조기를 들려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교양’을 실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핸드볼경기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자원봉사자들은 (주로) 장노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왜 성조기를 들면 안 되는지, 미국의 가치는 무엇인지 설명하고 설득했다.
네 번째는 계급적 구성이다. 확실한 근거나 자료 없이, 인상만으로 평가하기에 부정확하거나 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면면을 보면 상층 내지 상위 중산층 출신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 이하의, 노동계급이라 할만한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메이커가 없는 검은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군대에서 분대장 견장과 유사하게 녹색 테이프를 잘라서 양옆에 붙이는 식으로 자신이 자원봉사자임을 표시했다.
이러한 징후들은 20~30대의 불만이 조직된 집합 행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문턱’을 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1985년께의 반미 구호가 1986~1987년 NL의 폭발을 예고했던 거처럼, 올림픽공원 시위에 참여한 20대는 그 초입에 서 있다.
연대의 부재: 극우의 기회주의
그들의 움직임이 본격적인 ‘운동’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인물, 이데올로기, 상징, 그리고 조직과 연대가 필요하다. 1980년대 NL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체제의 거부’를 선언했지만, 반체제 민주화 세력들이 이미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과 연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민주화 연합의 전위대였고, 기성세대는 그들에게 정당성과 정치적 활로를 제공햇다.

그런데 2026년 인접 세력은 정반대다. ‘스틸 윤’이라 할만한 부정선거론자, 극우 유튜버, 윤어게인 잔존 세력은 올림픽공원 시위를 자신의 것으로 빼앗고 전유하려고 한다. 6월 8~9일부터 올림픽공원 시위대 내에서의 꽤 폭력적인 내부 투쟁과, 그 결과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가 새롭게 자리하고, 성조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행태는 사회운동의 에너지에 대한 일종의 기생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양상을 그리기는 꽤 어렵다.
다음 단계는 ‘강철서신’의 등장 아닐까
올림픽공원 시위는 새로운 사회, 정치운동의 초입에 가깝다. 이들의 분노를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엮어낼 이론, 조직, 상징이나 이데올로기는 현재로선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 대학생들이 느꼈듯, 지금의 20대는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주도하는 지금의 ‘네이션’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불만은 정치적인거나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중간에 좌절을 겪긴 했지만 꽤 성공적인 집단행동의 경험까지 갖췄다.
이제 남은 것은 축적된 에너지를 정치운동으로 바꿀 수 있는 인물과 기제다. 이것은 위에서부터의 지도가 아니라, 아래에서의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선택될 것이다. 1986년 강철서신이 했던 역할을 누군가가 맡게 되는 건 필연이다.

강철서신은 막연한 반체제 운동에 나름 체계적인 이론을 주었고, 갓 대중운동으로 규모를 키워가던 학생운동에 방법론을 제공했다. 주체사상에서 따온 이론이 호응을 얻었던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인 네이션의 대안으로서, ‘오염되지 않은 네이션’이란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품성론은 체제의 대안을 모색하고 싶어 하던 당시 20대들에게 ‘올바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윤리였기에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 올림픽공원 시위의 다음 장면은 2026년의 강철서신, 김영환, 구학련의 등장일 것이다. 기성세대는 80년대의 주류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세력으로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 타당한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반체제’의 에너지는 원래 그렇게 거칠고, 사회의 금기를 깨는 형태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