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고환율의 마술…"서울 김 부장은 웃고, 경기도 이 대리는 운다"
고환율의 마술…"서울 김 부장은 웃고, 경기도 이 대리는 운다"
입력 2026.01.22 04:30 25면
조귀동 명지대 겸임교수·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
이재명 정부의 큰 고민, '환율'
해법 찾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
한국 정치의 우경화 예고 지표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대표적 민생 경제문제가 환율이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 규모이고, 코스피 지수도 연일 상승하고 있지만 도리어 원화 가치는 급격히 내려가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 비중과 물가 변동을 반영한 원화 가치인 실질실효환율(REER‧2020년=100)은 지난해 11월 87.05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7월(87.73) 이후 가장 낮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뉴노멀"이라는 말을 했을 정도다.

원화 가치가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구조적 저성장이다. 지난해 우리 잠재성장률은 1.92%로 추정된다. 2023년(2.41%)부터 미국(2.43%)을 밑돌기 시작했다. 자본 수익률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2020년부터 해외 주식 투자가 늘면서 수출로 번 외화가 급격히 해외로 빠져나갔다.
개인 등 비금융기업의 해외 주식 투자는 2019년 151억 달러(22조 원)에서 2021년 796억 달러 △2023년 804억 달러 △지난해 3분기 1,611억 달러(237조 원)로 뛰었다. 금융투자회사나 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인다. 2000년대 초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초저금리에서 해외 자산에 적극 투자해 외환 시장을 뒤흔든 주부들)의 등장과 유사한 현상이다.
문제는 원화 약세가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즉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거시 경제와 금융 환경뿐만 아니라 정책과 정치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고환율이 민생에 미칠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생활비 부담의 증가다.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뛰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4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국내 요인, 즉 원화 가치 때문에 1% 상승하면 1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0.13% 높아질 것으로 봤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고유 요인에 따라 달러 가치가 변동할 때 물가에 미치는 충격(0.07%)보다 2배 가까이 크다.
물가 못지않게 주거비도 상승 압력이 커진다. 달러로 대금을 받는 수출 대기업 실적이 원화 약세로 껑충 뛰고, 성과급이나 배당으로 분배된 이익이 고스란히 부동산 시장, 특히 수도권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상반기 경기도 신도시 전세 임대료가 껑충 뛴 것처럼, 서울의 고가 아파트 가격 상승은 연쇄적인 효과를 야기한다. 2024년 사업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5% 뛰면, 삼성전자는 3,653억 원, SK하이닉스는 3,906억 원, 현대자동차는 1,731억 원씩 순이익(법인세 차감 전)이 늘어난다고 각각 공시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구조적인 저성장 속에서 경제 정책은 이전보다 보수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부터 주요 정당들은 분배 대신 성장을 전면에 내걸었다. 분배의 전제 조건인 성장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재정을 통한 예산 투입은 구조적인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환율 상승 국면에서 확장 재정은 물가를 끌어올리고, 금리 상승으로 금융불안을 야기하는 부작용이 커진다. 새로 출범하는 기획예산처에서도 ‘예산’보다 ‘기획’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이다.
양극화 문제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소득 및 자산 격차의 핵심 원인인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어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중간재나 원자재 가격이 비싸지면서 기업 전체 이익은 감소했다. 자동차, 운송장비, 전기·전자 업종 등 수출 비중이 큰 산업에서 이익 증가 폭도 컸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거액의 성과급을 받지만, 경기도 전세에 중소기업 다니는 이 대리의 월급 봉투는 제자리인 상황이란 의미다.
상황을 종합하면 이 같은 요인들이 쌓이면 ‘뒤처진 사람들’의 불만을 자극할 것이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생활비 이슈를 들고나와 당선된 것처럼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 층의 불만을 동원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주목받기 쉬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성장이 강조되고 재정 기반의 전통적 진보 정책이 힘을 잃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가 지금보다 더 오른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