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대한 생각 3 – 전·현직 대통령이란 기병대
이 글은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대한 판세를 해석하고, 그것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구조적으로 분석합니다. 다음의 지방선거 분석 글의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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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재명·박근혜·이명박은 최전선에 나섰나
지방선거 후반부 국면의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이재명 대통령,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이 정치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도 선거에서 특정 정당에 유리한 행보를 대놓고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징 자본을 갉아먹는 행위라,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사람, 특히 이재명과 박근혜는 같은 시기에 정치 전면에 나섰다.

두 사람의 행보는 본대(本隊)가 교착 상태에 있을 때, 이를 뚫기 위해 기병대가 투입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민주당은 선거 초반부 자신했던 것과 달리 여러 선거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대구·부산·경남 일대가 한 번에 밀릴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리더십의 공백 상태이고, 유권자를 동원할 마땅한 상징 자본이 없다.
전현직 대통령이 지금처럼 전면에 나서면서 발생하는 효과는 고정 지지층 결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5월 18일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에 대해서 반복해서 강경 발언을 내놓은 이후, 메시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의 첫 행보는 대구 칠성 시장이었고, 주로 영남권 일대를 방문하면서 보수 유권자의 결집을 의도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행보도, 박 전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박근혜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캠페인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이재명의 과감한 메시지와 행보 덕분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전직 대통령, 특히 탄핵을 당하고 보수가 지금처럼 쪼그라들게 만든 박근혜도 과감하게 정치 일선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재명이 직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은 대신, 이전 대통령들과 비슷하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박근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선거의 중심에 섰나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과 직접 연결될 경우 리스크는 분명하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시비다. 그리고 고정 지지층이 호응하는 만큼 보수가 강한 지역에서는 반대층도 함께 결집한다.
분명한 리스크를 무릅쓰고 이재명이 나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보수가 허약한 상황에서, 보수 결집이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지역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도권이나 충청 지역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등장으로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제친 지역은 없다.

두 번째로,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은 서울과 부산이라는 것이다. 정원오 후보(서울)와 전재수 후보(부산)가 당선되는 것이 그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나머지 접전 지역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더라도 이재명의 과(過)는 아니다. 대구와 경남은 각각 김부겸과 김경수의 선거다. 부산 북구 갑은 청와대 출신인 하정우 후보가 나섰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정청래 대표의 반복된 요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차출된 것이지, 청와대가 하정우를 추천해서 출마한 것이 아니다. 평택 을은 김용남과 조국 가운데 누가 되어도 골치 아픈 상황이지만, 지금의 선거 구도를 만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다시 말해 청와대 입장에서 지금의 선거 구도를 만든 책임은 이재명이 아니라 정청래와 당 지도부에 있다. 따라서 이재명은 그가 책임질 영역에서 정치적인 최선을 다하는 게 명분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이득이다. 그러므로 선거 전면에 거리낌 없이 나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이명박은 보수의 공백을 증명한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등판은 보수가 2017년 이후 10년간 아무런 리빌딩을 하지 했다는 것을 웅변한다. (참고: [보수 패망 36년사] ② 카드로 만든 집: 복고적 분배 연합과 문화전쟁의 귀결)
특히 영남권에서 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원래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지만 이번에는 투표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민주당 후보에 기울어져 있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수단이 부재하다. 대구 시장 선거에서 장동혁 당 대표가 추경호 후보 개소식 이후 대구를 찾지 못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라는 기병대의 등장은 이러한 곤란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보수가 별다른 대중 동원 수단이나 전략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문제는 박근혜가 갖고 있는 산업화라는 상징 자본이, ‘나의 삶이 개선되는 경험’을 통해서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 효과는 60대 이상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정확히는 60대 초중반의 연성 보수 유권자에게 효과를 가진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국민의힘이라는 ‘보수 내 한 분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산 북구 갑에서 박근혜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박민식 후보는 그간의 하락세를 뒤집지 못하는 양상이다. 세 번째는 영남권에서의 불만은 산업화 시기 만들어진 성장 모델이 무너지면서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불러일으킬 결집 효과가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가 선거 캠페인에 나선 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번 지방선거가 양쪽 모두의 고정 지지층을 결집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고, 국민의힘 고정 지지층 결집 과정에서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사라진 장동혁
전직 대통령의 등판이 두드러질수록, 현 지도부의 부재가 도드라진다. 앞서 언급했듯 대구 시장 선거에서 장동혁은 한동안 대구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3일 추경호 캠프 개소식 이후, 장동혁이 대구를 다시 방문한 것은 박근혜가 칠성시장을 돈 이틀 뒤인 25일에서였다. 평택 을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김문수가 상임선대위원장 내지는 명예선대위원장 자격을 맡아서 지원 유세에 나서는 것은, 지금의 국민의힘 지도부를 간판으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점차 잦아드는 것도, 장동혁의 입지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구의 사전투표율은 18.65%로 2022년 지방선거(14.80%)보다 3.85%P 늘어났다. 보수가 와해되지 않았을뿐더러, 이전처럼 사전투표를 기피하는 기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강성 보수의 목소리가 줄면, 그만큼 장동혁 대표의 기반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평택 을, 왜 조국은 고전하는가?
평택 을 재보선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는 고전하고 있다. 김용남 민주당 후보가 대부업체를 차명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상대방에게 치명타가 될 만한 사안이 있었지만,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박빙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과거의 행보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조국은 18~29세와 70세 이상에서 현격한 열세를 보인다. 18~29세는 2019년 그가 법무부장관 재직 시절 불거진 각종 의혹과 이후 재판의 여파일 것이다. 아울러 70세 이상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조국은 전통적인 민주당 정치인이라 볼 수 없는 인물로 간주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아야 할 테다. 조국은 2019년 ‘조국 사태’ 뿐만 아니라 2015~2016년 민주당 ‘혁신’ 과정에서 호남이 기반인 비문계를 공격하는 내부 쟁투에서 전면에 섰다.
조국이 안고 있는 핵심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거물 정치인으로 인식되느냐다. 여기에는 정치적 중량감 못지않게 전국 단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는 유권자의 평가가 들어간다. 김용남뿐만 아니라 김재연 후보(진보당) 등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인물론을 내세워서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조국에 대해서 민주당과 이른바 민주·진보 진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조국을 국회로 들이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는 여러 세력의 이해가 일치한다. 그러나 차명 대부업 의혹을 안은 후보를 조국의 대척점에 세운다는 것 자체가 적잖은 명분의 상실이다. 김용남의 존재는 지방선거 이후 두고두고 이슈가 될 것이다.

조국이 낙선할 경우, 관건은 그의 행보보다 그를 지지했던 비명-친문 집단이 앞으로 누구를 내세우느냐에 있다. 조국이 당선되어서 여의도에 복귀할 경우, 민주당 내에서 누가 호응할지가 문제다. 그를 맞아주는 세력이 없다면, 민주당으로 다시 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민주당 내부에서는 평택 을 공천과 조국과의 관계를 놓고 적잖은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평택을의 공천을 설계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아니라 지도부, 곧 정청래 체제다. 선거가 끝난 뒤 정청래가 이 질문에 쉽게 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리라는 것, 이것이 평택을이 남기는 진짜 숙제다.
‘민주당이 정치하는 방식’이 문제가 된 선거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당이 정치를 하는 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다음의 네 가지다.
⑴ 목표가 없는 선거다.
이번 지선에서 민주당이 역량을 집중해야 할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로는 영남에 깃발을 꽂고 진정한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행보는 그렇지 않았다. 영남권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그간의 정당 지지와 별개로 민주당 후보에 표를 던지겠다는, 교차투표할 유권자를 최대한 끌어와야 한다. 그런데 그 작업이 전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영남권 선거에서 후보자들을 열세로 내몰 수밖에 없는 고정 지지층 동원이 선거 중반 이후 주된 캠페인 기조가 됐다.
⑵ 기획 능력이 없는 선거다.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위해서 정무·정책 기획이 없었다. 행정통합을 내놓았지만, 행정통합은 지역 내 소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주력 지지층인 30~40대의 동요를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참고: 청와대 역량 부족 드러낸 행정 통합…'뉴 이재명' 기획 첫 실패 될까?) 에 4월 이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의제가 됐다.
5월 중순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청와대에서 아무런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의 등판이 빈 기획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까워 보이는 이유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진영 대 진영의 구도가 강해지는 것이었다.

⑶ 진영 결집 외에 수단이 없는 선거다.
중도를 끌어올 도구가 없다. 정원오의 서울시장 캠페인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여러 개발 공약을 내세우지만, 선거 캠프의 면면은 전통적인 민주당 인사들이고 다수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측으로부터 ‘박원순과 큰 차이가 없다’라는 공격을 받음에도 제대로 방어를 해내지 못하는 이유다. 부산 북구 갑도 마찬가지다. 하정우는 민주당 고정 지지층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에서 먼저 진영 결집을 시도하고, 전국 단위 이슈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전략적 목표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고, 제대로 된 작전 계획이 부재한 상황에서 익숙한 선거 캠페인 방식에 의존한 결과다. 민주당의 입지나 정치 지형은 변했지만,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는 게 지금 민주당 캠페인의 맨얼굴이다.
⑷ 지역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선거다.
부산 북구 갑과 전북지사 선거는 막연히 민주당 지지율이 높으니, 누가 나가도 될 것이라는 발상을 보여준다. 평택 을도 마찬가지다. 세 지역 모두 서울 밖의 ‘지방’이나 지방에 가까운 지역이라는 점이다. 하정우가 선거 시작 당시 ‘부산’ 전체를 호명하면서, 사실상 서울 사람들이 부산으로 간주하는 ‘동부산’ 지역 출마자나 다름없는 메시지를 던진 게 이를 잘 보여준다. TV토론에서는 구포·만덕·덕천의 낙후된 실태를 집중 거론했지만, 지역 실정에 별 관심이 없는 출향민이라는 이미지를 뒤집기는 역부족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번 선거는 지역 구도가 허물어진 것 못지않게 부유한 ‘서울’의 상위 중산층들이 얼마나 뒤처진 ‘지방’의 유권자 정서를 모르는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